2016 베니스 국제 영화제 공식 포스터 ⓒ 뉴스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2년 8월 6일, 제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무솔리니가 설립한 이 영화제는 원래 '국제 영화 예술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부로 시작됐다. 당시에는 경쟁 부문 없이 단순한 영화 상영회에 가까웠다.

영화제는 초반부터 유럽과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다. 1934년부터는 경쟁 부문이 도입돼 '무솔리니컵'이 최고상으로 수여됐다. 그러나 파시즘 선전 도구로 전락하며 예술적 독립성을 잃어갔다. 1938년에는 정치적 편향이 극에 달했고, 이에 반발한 프랑스 등은 참가를 거부하며 1939년 칸 영화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베니스 영화제는 재건의 길을 걸었다. 1946년, 독립적인 심사위원단이 구성되고 '황금사자상'이 최고상으로 제정되면서 영화제는 예술적 권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비유럽권 영화 발굴에도 기여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등 이탈리아의 신진 감독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정치적 혼란과 학생 운동의 영향으로 또 한 번 격변을 겪었다. 1968년에는 경쟁 부문을 폐지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했지만, 이는 영화제의 위상을 오히려 약화시켰다. 1970년대 후반에는 한동안 개최가 중단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베니스 영화제는 부활했다. 1980년 황금사자상이 부활하고, 이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와 같은 걸작들이 소개되며 위상을 되찾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적인 명성을 확고히 하며 칸,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부침을 겪었지만, 영화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모여 예술적 영감을 교류하는 중요한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