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해당 시리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80년대 에로 영화를 대표하는 '애마부인'은 당대에 열세 편의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에로 영화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애마부인'의 경우 여성의 개인적인 욕망을 다뤄 당시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있던 현대 여성의 주체성을 반영한 점에서 후대에 그 의의를 인정받기도 했다.
22일 공개된 이하늬, 방효린 주연 '애마'(Aema, 각본·연출 이해영)는 80년대 한국 영화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영화 '애마부인'의 탄생기를 상상력을 기반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1981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후 귀국한 여배우 정희란(이하늬 분)이 자신의 귀국 환영 파티에서 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 분)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며 시작한다. 정희란이 격분한 이유는 구중호가 건넨 신작 시나리오 때문이다. 구중호의 신성영화사와는 단 한 편의 작품만 끝나면 전속계약이 끝나는 상황. 정희란은 의미 없는 노출 장면으로 가득한 시나리오의 내용에 분개해 "더 이상의 노출은 없다"고 못을 박는다.
하지만 구중호는 새 시대에는 '3S'(스포츠, 스크린, 섹스)가 중요하다며 더욱더 에로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고분고분하지 않은 정희란을 조연으로 강등하고 신작 '애마부인'의 주인공으로는 신인 여배우를 캐스팅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렇게 오디션이 열리고, 달리 마음에 드는 여배우가 나타나지 않던 중에 '애마부인'의 연출자인 신인 감독 곽인우(조현철 분)는 오디션에 지각한 신주애(방효린 분)와 마주치고, 그가 지닌 매력에 푹 빠져든다. 구로 공단 여공들과 함께 생활하며 밤무대 백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신주애는 오랫동안 영화배우를 꿈꿨고, 노출 요구에도 영화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며 당당하게 몸을 드러내는 당찬 인물이다.


주인공을 캐스팅한 뒤에도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은 녹록지 않다. 정희란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감정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촬영을 거부하고, 굴러온 돌 신주애를 노골적으로 구박한다. 곽인우는 "은근하게" 에로티시즘을 드러내고 싶은 연출 의도와 달리 자꾸만 여배우를 벗기고 노골적으로 성애를 묘사하라고 요구하는 구중호의 압박에 괴로워한다. 그뿐만 아니라 황당한 이유를 들어 여러 신을 삭제하라고 명령하는 검열은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더욱 가시밭길로 이끈다.
6부작으로 완성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실제 사건 등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전복적인 결말은 동시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재해석의 여지를 안긴다.
70~80년대 여배우가 쓸 법한 교양 있는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하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고전적인 미모에 강한 자존심을 갖춘 여배우로서의 모습은 당대에 실존했던 몇몇 유명 여배우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신예 방효린은 신주애의 당돌하면서도 순수한 매력을 잘 표현했다. 안하무인 돈만 밝히는 제작자 구중호를 연기한 진선규는 80년대의 야만적인 시대성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훌륭한 연기를 보였다.
'애마부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지만, '애마'는 시대적인 배경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당시 군부와 연예계의 관계라든가, 여성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촬영 환경 등 80년대 충무로의 풍경과 풍속을 세세하게 그려낸 점이 흥미롭다. 거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썅X'이 되기를 자처한 여성들의 연대는 작품 안에서처럼 진취적이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시대, 어느 곳에선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