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물류 인프라가 후발주자의 진입을 가로막는 '필수설비'로 굳어져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차고지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쿠팡이 구축한 '물류 인프라'가 한국 유통시장의 이른바 '필수설비'가 되면서 후발주자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전국을 촘촘히 덮은 로켓배송망이 대체 불가능한 생활 인프라로 자리잡으면서 개별 기업의 단독 경쟁으로는 따라잡기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물류·IT의 경계를 넘는 '연합'과 쿠팡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집중하는 '특화' 전략이 독주 체제에 균열을 낼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그동안 약 10조원을 투자해 전국 단위 풀필먼트(FC)와 라스트마일(Last Mile) 배송망을 구축했다. 현재 전국 시군구 260곳 중 182곳(70%)이 이른바 '쿠세권'(쿠팡 로켓배송 생활권)으로, 쿠팡의 계획대로라면 2027년에는 전국이 로켓배송 영향권에 놓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물류망이 후발 주자 진입을 막는 장벽이자 시장의 필수설비로 굳어졌다고 본다. 전력망이나 통신망처럼 생활 속 인프라로 자리잡으면서 소비자가 가격 인상 등 조건 변화에도 대체 플랫폼을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쿠팡의 물류망은 경쟁사가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필수설비'가 됐다"며 "마치 고속도로를 독점한 사업자가 통행료를 올려도 소비자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어 떠나지 못하는 '구조적 고착화'(Lock-in)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은 적자를 감수하며 장기간 투자해 전국 단위 물류망을 구축했지만 경쟁사들은 그 시기를 놓쳤다"며 "단일 기업이 투자를 늘려도 이미 형성된 규모의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쿠팡이 보유한 경쟁력의 핵심은 '배송 밀도'와 '데이터'다. 수익과 직결된 라스트 마일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배송 차량을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주문량이 전제돼야 한다. 압도적인 트래픽을 보유한 쿠팡과 달리 주문량이 부족한 후발 주자들이 비용 효율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AI(인공지능)를 통해 고객이 어떤 제품을 주문할지 예측해 미리 배치하는 '선매입'(Pre-stocking)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 역량도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꼽힌다.

유통가 합종연횡… '물류 동맹' 넘어 '멤버십 결합'까지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GDC(글로벌 물류센터) 중 가장 진보된 형태의 로봇 물류센터로 평가받는 CJ대한통운의 인천GDC 오토스토어. /사진=CJ대한통운

이에 각 기업의 강점을 결합한 '동맹'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유통사의 상품 소싱력과 물류기업의 배송 인프라, 플랫폼 사업자의 IT 기술·트래픽을 결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자는 구상이다.

네이버의 자체 물류 연합체 'NFA'(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 구축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NFA를 통해 CJ대한통운 등과 손잡고 오늘·내일·희망일 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컬리와 협업해 새벽배송 품목까지 강화했다.

이 교수는 "네이버는 3자 물류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배송 경쟁력 확보에 투자해왔다"며 "현재로서는 네이버 정도만이 쿠팡을 의미있게 추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빠른 배송이 안되면 소비자는 이탈한다"며 "플랫폼이 초기 손실을 보더라도 물류비를 지원해 셀러(판매자)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배송 밀도를 높이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 간 멤버십 연합으로 혜택을 강화해 소비자를 유인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SSG닷컴은 신규 유료멤버십 '쓱세븐클럽'을 내년 1월 출시한다. 쓱배송 상품의 결제금액 7%를 자동으로 적립해주고 티빙과 제휴를 맺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웠고, 지난 15일 사전예약 고객 20만명 돌파 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와 넷플릭스의 멤버십 결합도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취향·체험으로 '대체불가' 영역 구축… 틈새 노린다

또 다른 해법은 쿠팡이 장악하지 못한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이다. 신선식품·패션·뷰티 등 특정 카테고리에서 전문성을 구축하거나 오프라인 점포만의 체험형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신선식품 분야에서는 컬리와 오아시스 등이 큐레이션 역량과 특화 물류를 기반으로 견고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패션의 무신사, 뷰티의 CJ올리브영 등도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며 전문몰의 위상을 굳히고 있다. 표준화된 공산품 위주의 쿠팡이 도달하기 어려운 '취향의 영역'을 선점했다는 평가다.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매장 자체를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꾸며 집객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마트는 체류형 쇼핑 공간 '스타필드 마켓',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을 선보였다. 기존점을 고객 체험형 공간으로 혁신하는 점포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다. 새단장을 마친 점포들은 두 자릿수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가 특정 앱에 종속되지 않도록 선택의 폭을 넓히는 '멀티호밍'(Multi-homing)을 장려해 시장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플랫폼 간 이동 장벽을 낮추는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기업들이 데이터 이동권을 보장해 시장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을 바로 따라잡기보다는 특정 영역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택지를 만드는 전략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며 "소비자가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돼야 시장의 경쟁도 살아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