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름 냄새 나는 제조사가 아닌 '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밝혔다. 결과는 처참했다. 부서 간 주도권 다툼 속에 소프트웨어 개발은 지연됐고 핵심 모델 출시는 수년씩 늦어졌다. 결국 경영진 교체와 수익성 악화라는 후폭풍으로 되돌아왔다.
전기차·소프트웨어 전환 실패의 교과서로 불리는 독일 폭스바겐과 자회사 카리아드의 사례다. 하드웨어의 강자가 소프트웨어라는 낯선 영역에서 어떻게 침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폭스바겐의 비극은 현재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전략을 총괄하던 핵심 수장의 자리가 공백이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송창현 사장이 물러난 이후 그가 이끌던 AVP(미래차플랫폼) 본부의 사령탑은 여전히 비어 있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42dot)에 수조 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통합·조율할 실질적 리더십은 약화된 상태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조직과 소프트웨어 중심의 신설 조직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구심점이 사라진 셈이다.
인선이 지연되는 사이 글로벌 경쟁 구도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테슬라는 통합 전자제어장치(ECU)와 자체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차량 전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OTA 체계를 이미 구축했다.
더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이다. 샤오미와 화웨이 등 빅테크가 가세한 중국 전기차 업계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을 구현하는 속도에서 전통 완성차 업체들을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차의 경쟁력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다. 스마트폰 수준의 유연한 사용자 경험(UX)과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있다. 현대차가 하드웨어 신뢰도를 쌓는 데 50년이 걸렸다면 소프트웨어 경쟁은 그 10분의 1 시간 안에 판가름 난다. 이 속도전에서 전략을 설계하고 진두지휘할 C레벨의 부재는 사령관 없이 전장에 나선 군대와 다르지 않다.
OS 개발이 늦어지고 통합 플랫폼 구축이 지연된다면 현대차의 SDV는 겉모습만 스마트한 자동차에 머물 수 있다. 하드웨어 경쟁력이 정점에 이른 지금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시점이다.
한때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구시대적 OS에 안주하다 아이폰 등장과 함께 몰락했듯 자동차 산업에서도 같은 장면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폭스바겐이 카리아드 실패 이후 리비안에 수조원을 투자하며 외부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는 현대차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