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감독과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감독(왼쪽부터)이 잉글랜드 FA컵에서 맞붙는다. /사진=로이터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감독과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감독(왼쪽부터)이 잉글랜드 FA컵에서 맞붙는다. /사진=로이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대회' 잉글랜드 FA컵이 또다시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있다. 트로피를 눈 앞에 두고 마주친 두 상대는 '런던 라이벌' 아스날과 첼시다.
아스날과 첼시는 오는 2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19-2020 잉글랜드 FA컵 우승 트로피를 두고 결전을 벌인다.

많은 이야기가 엮여있는 두 팀의 대결이다. 두 팀은 지난 시즌 이미 한차례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만난 적이 있다.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격돌한 두 팀의 대결은 첼시의 4-1 승리로 끝났다. 당시 3점차 패배의 굴욕을 겪은 아스날이 명예 회복에 성공할 지 주목된다. 더불어 두 팀을 모두 거친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현 첼시)의 활약 여부, 어떤 팀이든 승자는 시즌 유일의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는 점도 이날 경기로 시선을 쏠리게 한다.


이날 경기의 관전포인트는 또 있다. 바로 젊은 감독들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여부다. 첼시를 맡고있는 프랭크 램파드 감독과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감독은 각각 이번 시즌 시작 전과 중반에 구단으로 합류했다. 현역 시절 팀에서 뛰었다는 점, 주장 완장을 한번씩 차본 경험이 있다는 점, 주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였다는 점, 올해가 프리미어리그 감독 데뷔 시즌이라는 점 등 두 감독이 지닌 공통점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들이 웸블리 스타디움에 이르기 전까지 걸어온 길은 조금 달랐다.

램파드와 아르테타, 선수와 감독으로 걸어온 성공가도

첼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의 프랭크 램파드(왼쪽 아래). 램파드는 존 테리(왼쪽 위)와 더불어 팀의 주장단으로 오랜 기간 자리매김했다. /사진=로이터
첼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의 프랭크 램파드(왼쪽 아래). 램파드는 존 테리(왼쪽 위)와 더불어 팀의 주장단으로 오랜 기간 자리매김했다. /사진=로이터
램파드 감독은 2000년대를 통틀어 잉글랜드 미드필더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웨스트햄 유스팀에서 뛰던 램파드는 2001년 첼시에 입단한 이래 2014년 팀을 떠날 때까지 줄곧 푸른색 유니폼만을 입었다. 구단 통산 공식전 648경기에 출전해 211골을 터트리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전형으로 꼽혔다. 그가 기록한 211골은 지안프랑코 졸라, 디디에 드로그바, 니콜라 아넬카 등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현재까지 구단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램파드가 중원을 이끌던 시기, 첼시는 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4번의 FA컵 우승, 2번의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첼시 역사에 단 3차례 뿐인 유럽클럽대항전 우승(챔피언스리그 1회, 유로파리그 2회) 중 2차례에 크게 일조했다. 특히 2011-2012시즌에는 퇴장 징계로 결승전에 나서지 못한 존 테리를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가 승부차기까지 끝에 바이에른 뮌헨을 누른 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반면 아르테타 감독은 현역 시절 내세울만한 기록이라고는 아스날에서 기록한 FA컵 우승 정도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던 아르테타는 레인저스, 레알 소시에다드를 거쳐 2005년 에버튼에 안착했다. 그는 에버튼에서 6시즌 동안 뛰며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눈에 띄는 특출난 활약은 없었으나 미드필더 전 지역을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성향과 전술 이해 능력, 그리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주목받았다.


아르테타는 2011년 아르센 벵거 전 감독의 부름을 받고 아스날로 이적했다. 당시 아스날은 극심했던 암흑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반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아르테타 등을 시작으로 페어 메르테사커, 루카스 포돌스키, 산티 카솔라가 연이어 합류한 아스날은 2013년 메수트 외질을 영입하며 다시 우승권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대내외에 공표했다. 이때 주장완장을 받은 이가 아르테타다. 아르테타는 비록 잦은 부상으로 경기에 자주 나서지는 못했으나 선수단의 중심을 잡으며 아스날의 FA컵 2연패(2014, 2015년)에 기여했다.

지난 2015년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할 당시 아스날의 주장이던 미켈 아르테타 현 감독이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2015년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할 당시 아스날의 주장이던 미켈 아르테타 현 감독이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두 사람은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뒤에도 행보가 갈렸다. 2016년 미국 뉴욕시티 FC에서 은퇴를 선언한 램파드는 잠시의 휴식 이후 2018년 2부리그 더비카운티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첫 지도자 경력을 상위리그 1군 감독으로 시작하는 데 여러 우려가 따랐다. 하지만 램파드는 첫시즌 더비카운티를 단숨에 승격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키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비록 중요한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앞두고 첼시와의 계약 사실을 밝혀 더비 팬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으나 최소한 지도자로서는 자신이 어느 정도 준비됐음을 첼시에 어필할 수 있었다.
반면 아르테타는 세계적인 전술가의 밑에서 수련 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은퇴 이후 벵거 감독의 유스팀 코치 제안을 내려놓고 맨체스터 시티를 막 이끌기 시작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 밑으로 들어갔다. 아르테타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과르디올라 감독의 수족처럼 붙어다니며 그의 전술적 능력과 팀을 운영하는 방식을 온 몸으로 흡수했다. 과르디올라 감독 스스로도 아르테타를 아끼는 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곤 했다.

다만 두 사람이 친정팀에 돌아오게 된 계기는 엇비슷했다. 램파드 감독은 더비 지휘봉을 잡은지 한시즌 만에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8-2019시즌 첼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에 오르는 등 겉으로는 준수한 성과를 거뒀으나 속에서는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내분이 깊어지고 있었다. 램파드 감독은 첫 프리미어리그 감독 경력부터 나이 든 선수로 가득 찬 팀의 분위기를 수습하며 챔피언스리그에 출전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아르테타에게는 시간이 더 촉박했다. 새 시즌 역시 과르디올라 감독과 맨시티에서 시작한 아르테타는 아스날이 위기에 빠진 지난해 말 소방수의 임무를 띄고 다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밟았다. 당시 아스날은 우나이 에메리 전 감독이 선수단 관리에 완전히 실패하며 팀 분위기가 최악을 치닫고 있었다. 성적 역시 저조해 반환점인 19라운드를 돌았을 당시 아스날의 위치는 리그 11위(5승9무5패)였다. 아르테타는 챔피언스리그는 커녕 유로파리그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모래알 팀에 햇수로 4년 만에 복귀했다.

데뷔 시즌에 얻은 메이저급 우승 기회… '놓칠 수 없다'

프랭크 램파드 감독(왼쪽)은 메이슨 마운트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해 큰 효과를 봤다. /사진=로이터
프랭크 램파드 감독(왼쪽)은 메이슨 마운트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해 큰 효과를 봤다. /사진=로이터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두 감독은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어느 정도 달성하며 데뷔 시즌을 무난히 마무리하고 있다.
램파드 감독은 팀의 제1목적이던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다시금 성공했다. 그는 시즌 초반부터 태미 에이브러햄, 메이슨 마운트, 피카요 토모리, 리스 제임스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며 '에이스' 에덴 아자르(레알 마드리드)의 이적 공백을 매웠다. 에이브러햄이 난조를 보이자 이번에는 정반대 성향인 베테랑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를 적극 기용하며 위기를 넘겼다. 램파드 감독의 지휘 아래 첼시는 20승6무12패 승점 66점을 거두며 리그 4위에 안착했다.

아르테타 감독 역시 무너지는 팀을 다잡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부임 첫 두경기를 1무1패로 보낸 아르테타는 새해 첫경기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를 2-0으로 잡아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변칙적인 백3 전술과 그라니트 자카-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을 중심축으로 한 선수단 운용으로 꾸준히 성적을 끌어올렸다. 시즌 막판에는 리그 1, 2위인 리버풀, 맨시티를 연이어 잡아내며 다음 시즌에 대한 아스날 팬들의 희망을 되살렸다. 비록 아스날은 리그 8위로 시즌을 끝내며 유로파리그 진출에 실패했지만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마지막 성과를 눈 앞에 뒀다.

미켈 아르테타 아스날 감독(오른쪽)의 부임은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등 기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불러왔다. /사진=로이터
미켈 아르테타 아스날 감독(오른쪽)의 부임은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등 기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불러왔다. /사진=로이터
두 감독은 모두 프리미어리그 감독 데뷔 첫해 메이저급 트로피를 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보다 절박한 쪽은 아르테타다. 당장 FA컵에서 우승한다면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 챔피언스리그보다 위상은 떨어지지만 유로파리그 역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최고의 대회다. 이번 여름 선수단 개편을 노리는 아르테타인 만큼 유로파리그 진출 여부는 구단의 이적자금 지원액과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또다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램파드 입장에서도 FA컵은 포기할 수 없는 대회다. 첼시는 FA컵 결승전이 끝나면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챔피언스리그 16강 바이에른 뮌헨전에 나선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0-3으로 패한 첼시는 힘겨운 뮌헨 원정임에도 승리가 절실하다. 재개 이후 리그에서 다소 침체를 겪었던 첼시인 만큼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FA컵 결승에서 '런던 라이벌' 아스날을 누르고 우승한다면 챔피언스리그에 임하는 각오도 다시 다질 수 있다.

현역 시절 그라운드를 누볐던 각 구단의 전설들이 수트를 입고 벤치에 앉아 지시를 내리는 광경은 오랜 서포터들의 심장을 설레게 만든다. 램파드와 아르테타는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자신들의 향후 20년 동안 지도자로서 이름을 떨칠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팬과 당사자 모두를 설레게 만든 데뷔 시즌, 진정한 화룡점정을 찍을 주인공은 누가 될지. 웸블리 스타디움을 붉은색 혹은 푸른색으로 뒤덮을 주인공은 누구일지. 양 팀 팬들의 시선이 런던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