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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치한 리버풀 선수들이 트로피 수여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
프리시즌의 묘미라고 한다면 역시 이적시장이다. 유럽 구단들은 매 여름이적시장마다 전력 보강을 위해 큰 돈을 쓴다. 프리미어리그는 그 특징이 더 분명했다. 최상위권 구단부터 이제 갓 리그에 올라온 승격팀까지 소위 '빅 사이닝'(대형 영입)을 하는 일이 흔했다.
이번 시즌도 큰 차이는 없다. 여러 구단에서 주목할 만한 영입 사례가 이어진다. 그런데 작은 차이가 있다. 지갑을 더 열 것 같은 팀이 신중하게 접근하는가 하면 충분한 자금이 없어 눈치만 보는 팀도 있다. 오랜 기간 '돈=프리미어리그'로 통했던 공식에 균열이 찾아온다.
내로라 하던 구단들이… 어째 올해는 '조용?'
이런 분위기는 소위 프리미어리그 내 '빅6'로 불리는 팀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풍긴다. 너나할 것 없이 막대한 돈을 쓰며 이적시장을 주름잡던 구단들이 어찌된 지 조심스럽게 시장을 살피는 추세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은 11일(이하 한국시간) 기준 왼쪽 수비수 코스타스 치미카스가 유일한 영입이다. 치미카스 영입에는 1100만파운드(한화 약 165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큰 돈 쓰기를 주저하는 리버풀이다. 공격수 티모 베르너와 한참 연결됐으나 협상에서 철수한 점, 티아고 알칸타라를 놓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 등이 이를 반증한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은 11일(이하 한국시간) 기준 왼쪽 수비수 코스타스 치미카스가 유일한 영입이다. 치미카스 영입에는 1100만파운드(한화 약 165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큰 돈 쓰기를 주저하는 리버풀이다. 공격수 티모 베르너와 한참 연결됐으나 협상에서 철수한 점, 티아고 알칸타라를 놓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 등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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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부 구단'의 대명사로 통하는 맨체스터 시티는 이번 여름이적시장에서 아직 미드필더 페란 토레스(왼쪽), 수비수 나단 아케를 데려오는 데 그치고 있다. /사진=맨시티 공식 트위터 |
갈 길 바쁜 구단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쟁에서 탈락한 토트넘 홋스퍼와 아스널은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소규모 영입에 그치고 있다. 토트넘은 미드필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와 수비수 맷 도허티를 영입하기 위해 각각 1500만파운드(약 230억원)씩 지불했다. 베테랑 골키퍼 조 하트는 자유계약선수라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스널 역시 '작심하고' 돈을 쓴 영입 사례는 수비수 가브리엘 마갈레스(약 420억원)에 그친다. 경험 많은 미드필더 윌리안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고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미드필더 대니 세바요스를 다시 임대해왔다. 시즌 도중 완전이적으로 전환한 수비수 파블로 마리와 세드릭 소아레스 역시 거액의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았다. 미드필더 후셈 아우아르(올림피크 리옹)와 토마스 파티(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협상은 각 선수들의 소속 구단이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이적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구단은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다. 다만 이들 역시 사정은 이전과 미묘하게 다르다. 첼시의 경우 이번 여름이적시장에서 공격수 티모 베르너, 미드필더 카이 하베르츠와 하킴 지예흐, 수비수 티아구 실바와 말랑 사르, 벤 칠웰 등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 이적료는 대부분 과거 구단을 떠났던 에덴 아자르, 알바로 모라타의 몸값으로 충당됐다.
맨유 역시 지난 1월 미드필더 도니 판 더 빅을 3500만파운드(약 490억원)에 데려왔다. 하지만 정작 오랜 기간 공을 들였던 제이든 산초 이적 협상은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산초의 소속팀 도르트문트는 최소 1억파운드(약 1520억원) 이상의 금액을 원하는 반면 맨유는 선수 한명에게 7000만파운드(약 1065억원) 이상을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 때린 코로나19, 그리고 중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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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6일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아스널과 왓포드 선수들이 무관중 속 경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로이터 |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각 국가들은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이는 스포츠 이벤트를 중단시켰다. 축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럽 대형 리그들이 3월 중순을 기해 속속 일정을 중단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끝내 2019-2020시즌 조기 종료를 택해야 했다. 이외 리그들은 5월 이후 순차적으로 재개됐으나 무관중 경기를 펼쳐야 했다. 입장권료가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 프로축구팀에게 무관중은 치명적이었다.
프리미어리그는 저마다 살아남기에 나섰다. 각 구단마다 1군 선수들과 운영진이 임금을 깎았다. 아스널 등 일부 구단은 재정난을 버티지 못해 소속 직원들 중 일부를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재정난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맨유의 경우 지난 5월 발표한 1분기 재정지표를 통해 구단 빚이 4억2900만파운드(약 6540억원)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토트넘 역시 재정난으로 인해 지난 6월 은행으로부터 1억7500만파운드(약 2670억원)를 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1000억원이 넘는 선수 몸값을 선뜻 지불하기란 어렵다.
단순한 입장수익 이상의 문제도 있다. 바로 중계권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유럽에서 가장 비싼 무대'로 변모하게 된 원인은 한껏 높아진 중계권 계약 금액도 한 몫 했다.
지난해 미국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가 2019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맺은 총 중계권료 합계는 92억파운드(약 13조9800억원)다. 연 단위로 따지면 매해 4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스포츠 비즈니스 인스티튜트' 자료를 보면 프리미어리그 중계권 계약 규모는 지난 1992년 출범 당시 2억3200만파운드(약 3525억원)에 불과했으나 2001년 처음 10억파운드(3년 13억7800만파운드)를 돌파했고 이후에도 쭉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 2016~2019년 계약 규모는 81억3600만파운드(약 12조3600억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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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2000년대 이후 스타 플레이어들이 몰려들며 중계권 계약 규모도 덩달아 급성장했다. /사진=로이터 |
반면 직전 계약(2016~2019)의 경우 영국 내 계약은 51억3600만파운드(약 7조8000억원), 해외 계약은 30억파운드(약 4조5500억원)였다. 금액 자체가 불어나기는 했으나 최대 9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던 이전과는 달리 그 격차가 한껏 줄어들었다. 2019~2022 계약의 경우는 해외 계약 규모가 42억파운드(약 6조3800억원)로 훌쩍 뛰어올랐다. 해외 중계권 계약이 프리미어리그에 끼치는 영향력이 날로 커짐을 방증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여기에도 균열이 생겼다. 최근 프리미어리그는 중국 측 중계권자인 스트리밍 사이트 'PPTV'와 맺었던 계약이 파기됐다고 전했다. PPTV는 3년 동안 5억6400만파운드(약 8570억원)에 중국 쪽 독점 중계권을 사들인 '주요 고객'이었다. 미국과 중동에 이어 해외 중계권 계약 3위에 해당한다. 이런 우수 고객이 한순간 빠져나간 것이다.
계약 해지 사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영국 'BBC'는 PPTV가 지난 3월까지 지급하기로 돼있던 1억6000만파운드(약 2430억원)의 중계권 금액을 입금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PPTV는 중국의 글로벌 기업인 쑤닝 그룹에 속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정 상황이 어려워진 쑤닝 그룹이 프리미어리그 중계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중계권 배당금은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에게 또다른 주 수입원이다. 막대한 규모의 해외 중계권 계약 중 일부가 한순간에 떨어져 나가며 프리미어리그와 소속 구단들은 장기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런 사태 등이 겹치며 불거진 '미래의 불확실성'이 구단들을 소극적 투자로 이끈다는 분석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유럽 최고의 '부자 리그'로 맹위를 떨쳤다. 다른 리그의 일부 구단들을 제외하면 돈으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이는 점점 극단적인 '머니 싸움'으로 변질됐고 선수 몸값이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등 선수 인플레이션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때문에 이번 여름이적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낯설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실패한 이적시장 단속을 코로나19가 대신 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일련의 현상이 또다른 '뉴 노멀'로 자리잡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