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컬처'(Multi culture) 홍콩. 오늘의 홍콩은 공간과 시간을 넘나든 온갖 것들의 총체다. 다양함으로 조화를 이룬 홍콩의 길 또한 다채롭다. 차가운 도회적 이미지나 시골 외갓집의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삶을 닮은 길이 있다. 또 산, 계곡, 습지, 해변, 바다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뽐내는 트레일도 있다. 홍콩섬을 중심으로 259개의 섬과 주룽반도로 이뤄진 홍콩.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의 도심은 전체 면적(서울의 1.8배)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자연이다. 도심에서 단 10분이면 산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다채로운 도보여행의 세계로 떠날 수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트레일은 크게 네개로 분류된다. 홍콩섬의 홍콩트레일(영문약자 H), 란타우섬의 란타우트레일(L), 신계지역의 맥리호스트레일(M)과 윌슨트레일(W)이 그것이다. 도로로 치면 간선에 해당하고 이 트레일을 중심으로 수많은 컨트리트레일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트레일은 500미터씩 저마다의 영문약자를 앞세운 이정표로 트레커를 친절히 안내한다.
홍콩트레일과 란타우트레일은 지역명을 썼다. 다른 두 트레일은 트레킹을 즐겼던 옛 총독의 이름을 땄다. 어린이들이 킥보드를 타는 평탄한 곳이지만 땀깨나 빼는 코스가 있다. 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극찬한, 눈이 호강하는 길이 있다. 아울러 주상절리 등 유네스코 지질공원의 면모를 자랑하는 곳도 있다. 윌슨트레일은 버겁다.
홍콩트레일의 간판격인 드래곤스백 전경. 남중국해 조망이 압권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드래곤스백의 종점인 타이 롱 완 빌리지 골목길에 접어든 트레커들. /사진=박정웅 기자
◆ 접근성·경관 좋은 홍콩·란타우 트레일 홍콩트레일은 약 50㎞ 8구간으로 구성됐다. 이 트레일의 간판은 8구간 드래곤스백이다. 용의 등판을 닮았다고 해 겁먹으면 오산이다. 가볍게 걷는 둘레길로 생각하면 된다. 남중국해의 아름다운 전망이 압권이고, 무엇보다 산죽을 가볍게 쓸어내리는 해풍이 시원하다. 드래곤스백을 바람의 언덕이라 불러도 좋겠다.
길의 시작은 토 테이 완 빌리지 인근의 섹 오 로드에서 시작한다. 대숲 토끼굴을 지나 섹 오 피크(284m)에 서면 파노라마처럼 남중국해가 펼쳐진다. 발 아래로 오른쪽엔 섹 오 비치가, 왼쪽엔 빅 웨이브 베이 비치가 각각의 은빛 속살을 뽐낸다. 도착지는 서퍼의 천국인 타이 롱 완이다. 빅 웨이브 베이 비치로 향하는 타이 롱 완 빌리지의 골목길은 정겹다. 운 좋으면 이 길을 사랑하는 홍콩배우 주윤발과 인증샷을 찍을 수 있다. 8.5㎞ 완사면을 걷는 드래곤스백은 넉넉잡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영화 <중경삼림>의 무대가 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피크 루가드 로드에서 홍콩대학 방향으로 해튼 로드를 따라 산을 내려오는 트레일도 좋다. 홍콩대학 인근에는 노호, 소호, 포호, 란 콰이 퐁 등 도심 유명 관광지가 많다. /사진=박정웅 기자
소호 거리의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해튼 로드의 종착역인 홍콩대학 인근에는 소호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사진=박정웅 기자
또 홍콩트레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루가드 로드다. 친숙한 홍콩의 마천루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뷰포인트가 여러곳 있다. 빅토리아 피크(552m)의 둘레길인 루가드 로드를 찾으려면 홍콩 명물인 피크트램에 몸을 싣자. 최대 27도의 급경사를 오르는 120년사의 이 트램은 홍콩 역사를 간직했다. 트램이 멈춘 곳에서 대표 관광지인 피크타워를 올라도 좋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루가드 로드 이정표가 보인다. 루가드 로드는 시작과 끝이 한 곳인 원점회귀 코스다. 빅토리아항을 중심으로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아우르는 전망에 탄성이 쏟아진다. 루가드 로드를 한바퀴 돌아도 좋고 해튼 로드를 따라 홍콩대학으로 내려와도 좋다. 그 길에는 세계대전의 흔적인 파인우드 배터리(포대)가 있다. 노호, 소호, 란 콰이 퐁 등 홍콩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도심여행지가 홍콩대학과 가깝다. 란타우섬은 홍콩에서 가장 큰 유인도다. 첵랍콕공항, 디즈니랜드, 옹핑 케이블카가 란타우의 자랑이다. 또 연말 개통을 앞둔 세계 최장 해상대교인 강주아오대교(55㎞)의 거점이다. 이 다리는 홍콩(란타우)-주하이-마카오를 연결한다.
란타우트레일이 시작되는 보린사. 란타우섬의 주인인 물소가 보린사와 청동좌불상을 배경으로 경내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란타우트레일의 지혜의 길(wisdom of path)에는 불경 <반야심경>을 새긴 나무기둥들이 있다. 23번째 빈 기둥에는 소원을 담는다. /사진=박정웅 기자
란타우트레일(약 70㎞ 12구간)의 주인은 물소다. 부처를 닮은 온순한 물소가 정겹다. 길의 시작은 옹핑 빌리지다. 옹핑 빌리지로 향하는 옹핑 360 케이블카(5.7㎞)는 아찔하다. 케이블카 아래 트레일을 따라 오르려면 무릎깨나 아플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포린사와 청동좌불이 기다린다. 복을 빌면서 268개의 계단을 오르면 은은한 미소로 아시아 최대규모의 부처가 반긴다. 맞은편에는 홍콩에서 두번째 높은 평웡산(934m)이 위용을 뽐낸다. 산정에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포린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지혜의 길이다. 지혜의 길에는 불경 <반야심경>을 새긴 나무기둥이 우뚝 솟아있다. 글귀가 없는 23번째 기둥에 소원을 담아보자.
란타우트레일 옹 핑 빌리지에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청동좌불상이 있다. 268개 계단을 오르면 보린사와 펑웡산, 남중국해 전경이 펼쳐진다.
수상가옥이 자랑인 타이 오 마을. 마을의 상징인 핑크돌고래는 강주아오대교 공사로 그 수가 줄었다고 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란타우섬은 절반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자연보호구역이다. 개인차량 출입이 통제된다. 섬의 발인 셔틀버스를 이용해 타이 오 마을로 시간여행을 떠나자. 수상가옥은 타이 오의 마을의 자랑이다. 타고난 가난을 부끄럼 없이 내보이는 원주민의 삶이 아름답다. 주말이면 인파로 붐빈다. 하지만 비좁은 나무데크 골목길의 인파는 의외로 물이 흐르듯 질서정연하다. 골목투어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유가 있다면 해안 산책길을 걸어보자. 그곳엔 짭조름한 새우젓과 말린 생선, 원주민이 신으로 섬기는 돌 토템이 있다. 또 원주민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호사스런 헤리티지 호텔이 있다.
맥리호스트레일 2구간 함 틴 완 해변. 멀리 삼각형 모양으로 우뚝 솟은 산은 샤프 피크다. /사진=박정웅 기자
해변에서 패들보트를 즐기는 현지인들. 맥리호스트레일 2구간은 산, 계곡, 해변, 바다, 슾지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통과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 자연경관이 빼어난 맥리호스트레일 맥리호스트레일은 주상절리 등 화산지형으로 유네스코 지질공원이 된 사이 쿵을 관통한다. 트레일은 전체 100㎞ 7구간으로 구성됐다. 이 중 하이 아일랜드 동댐서 팍 탐 아우까지 2구간(약 18㎞)을 추천한다. 지질학적 가치에다 다양한 자연경관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매력으로 해외 트레커의 단골명소가 됐다. 5000여명 규모의 옥스팜(트레일워커, 48시간 완주)이 매년 11월 열린다. 올해는 17일이다.
오지 마을인 함 틴의 맥리호스트레일 2구간 이정표가 아기자기 하다. 2구간은 빼어난 자연경관뿐 아니라 오지 마을도 지난다. /사진=박정웅 기자
맥리호스트레일의 거점인 사이 쿵에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선착장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을 흥정하는 모습. /사진=박정웅 기자
동댐서 주상절리와 해식동굴을 본 뒤 2구간을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면 바다와 저수지(하이 아일랜드)의 푸른빛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걷다 보면 롱 케 완이다. 금빛 백사장 가까이 리조트가 있다. 착각하지 말자. 이곳은 리조트가 아닌 향정신성치료소다. 위험한 곳이라고 오해할 필요가 없는 게 우리로 치면 금연치료소 같은 격이다. 흉악한 범법자를 격리한 곳이 아니다. 따라서 감옥의 철조망이나 높은 담벼락 같은 것은 없다. 다시 산(사이 완 산)을 오르면 또 다른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셔터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사이 완서 함 틴 완으로 향하는 코스가 장관이다. 남중국해의 시원한 전경 속에 사이 완, 함 틴 완, 타이 완 등 아름다운 해변이 잇따라 펼쳐진다. 함 틴 완 너머 샤프 피크(468m)가 가파른 트레일을 내보인 채 손짓한다. 손짓을 따라갔다간 큰코다친다. 사이 완과 함 틴 완의 자그마한 마을에는 간단히 허기를 채울 편의시설이 있다. 대중교통 접근이 전무한 오지 마을로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를 반긴다.
맥리호스트레일은 만만치 않다. 산, 계곡, 해변, 바다, 습지를 넘나들기 때문에 호흡을 잘 조절해야 한다. 2구간만 해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동댐까진 대중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사이 쿵서 택시를 이용하면 편하다. 요금은 100홍콩달러(한화 약 1만5000원)면 된다. 도착지인 팍 탐 아우엔 사이쿵으로 향하는 버스가 30분마다 있다. 미니버스나 택시를 잡아도 된다. 사이 쿵 센트럴은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다. 8년 연속 미쉐린에 이름을 올린 룩푹은 한국인 입맛과 가까운 전복과 찜요리를 내놓는다.
복을 부르는 라마섬의 돼지 벽화. 라마섬은 홍콩배우 주윤발의 고향이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빈다. /사진=박정웅 기자
라마섬 역시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산물을 즐기는 관광객들. 일부 식당은 홍콩섬을 연결하는 무료 페리도 제공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섬 트레킹은 홍콩 트레일의 또 다른 매력이다. 섬 규모만큼 란타우의 트레일이 크다면 라마섬과 샤프 아일랜드의 트레일은 아기자기하다. 특히 라마섬은 주씨의 집성촌인데 트레킹 애호가인 주윤발의 고향이다. 주윤발이 자주 찾는다는 그의 생가는 애써 찾지 말자. 라마섬의 두 선착장인 소 쿠 완(피크닉 베이)이나 용 수 완으로 향하는 배편이 센트럴 페리에 있다. 용 수 완에 내리면 사 포 뉴 빌리지가 있다. 서양인이 많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화력발전소 굴뚝이 엉뚱하게 솟아있다. 오솔길을 따라 2시간 남짓 걸으면 소 쿠 완이다. 이곳 또한 해산물 천지다. 해산물 식당이 센트럴로 향하는 배편을 무료 제공한다.
홍콩 트레킹은 11~2월이 적기다. 바람이 선선한 데다 기온 또한 적당히 내려간다. 반팔 차림에 바람막이 하나면 족하다. 가을 건기에 해당하나 우산이나 우비를 챙기는 것이 좋다. 모기퇴치제와 상비약은 기본이다. 모기퇴치제는 그곳 모기의 성질에 맞게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반대로 상비약은 내 몸에 맞는 한국 것이 좋겠다. 사전에 홍콩관광청과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 코스 등 상세정보를 체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