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사진=임한별 기자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사진=임한별 기자

경비원과 운전기사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행 및 폭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진술조서를 읽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욕설을 빼고 읽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 심리로 열린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첫 공판기일 현장.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쭈욱 읽어내려가자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이사장의 면면이 낱낱이 공개됐다.
이 전 이사장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이 전 이사장의 엄격한 성격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재판 시작 6분 전부터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이 전 이사장은 변호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 전 이사장 측 변호인은 "이 전 이사장은 성격 자체가 본인한테 굉장히 엄격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정확히 일하길 원하는 기대치가 있다"며 "그래서 제대로 못할 경우 화를 냈는데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부족함에서 나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전 이사장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법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이사장 변호인은 "상습적인 폭행이 맞는지, 폭행에 이용한 물건들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재판부가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이 전 이사장은 '변호인의 의견과 다른 부분이 있냐'고 재판장이 묻자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날 재판에서 이뤄진 서증조사(문서로 증거를 조사하는 것) 절차에선 웃지 못할 재판부의 발언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장인 송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작성한 진술조서를 검사가 읽어내려가는 과정에서 이 전 이사장이 발언한 욕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자 "욕설이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 검사님도 직접 그 부분을 재연하기 민망할 것 같다"며 "화면에만 서증을 띄워주시고 욕설을 뺀 나머지 부분을 천천히 읽어주시면 욕설은 우리가 알아서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검사도 "(민망한 게) 맞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이사장은 2011년 11월~2017년 4월 경비원과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을 상대로 총 22회에 걸쳐 상습 폭행 및 폭언을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한 도로에서 차량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다리를 발로 걷어차 2주 동안 치료를 받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 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를 폭행하고 공사 자재를 발로 차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는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출입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향해 조경용 가위를 던진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내달 14일 다음 재판을 열고 증인 신문을 진행키로 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경비원과 운전기사가 증인석에 앉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