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남자배우와 셋이서 처음 연습하던 날, 긴장해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남자배우가 저 멀리서 먼저 옷을 벗고 다가오는데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사람의 본질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나'역의 배우 윤채연)

"사람을 볼 때 옷이나 다른 사회적 장치에 의해 선입견을 가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편견을 걷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 본연의 '아담'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우' 역의 배우 최규화)
누드 속에서 인간을 보다

날것(올 누드 배우)들의 사랑 논쟁으로 지난해 숱한 화제를 뿌리고 떠났던 연극 <논쟁>이 돌아왔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가 처음 알몸으로 대면하게 되는 충격적인 장면과 배우들의 부담감 때문에 서구 연극계에서도 흔히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어서 희소성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8월28일 대학로 예술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첫 선을 보인 연극 <논쟁>은 1, 2차 연장공연장공연 전회매진에 보조석, 입석까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마리보(P. Marivaux) 원작의 18세기 작품이지만 남자와 여자에 대한 미묘한 심리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한다.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변심하는가를 실험하는 내용. 갓 태어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네 명을 각자 격리시켜 자라게 한 후 이들이 성인이 된 뒤 서로 만나게 한다. 처음에 순수했던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또 다른 이성과의 사랑과 변심이 얽히며 끝없이 논쟁 속으로 휘말린다.

<논쟁>의 연출가 임형택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는 "(알몸의 배우들을 보면서 역으로) 탯줄이 잘려져 나간 순간부터 사회화의 무게 때문에 상처가 난 아이들,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누드 속에서 인간을 보다

실제 지난해 2개월 만에 1만여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한 <논쟁>은 당시 알몸 공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노출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끌어냈다. 이에 임 연출가는 "지난해 논쟁이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장기 공연도 가능하니 '유명인을 쓰자' '더 확실히 노출하자' 등의 얘기가 많았지만, 자연스런 연기의 질감과 주제의 선명함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4월18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20세 이하 관람 불가. (02) 745-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