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사는 친척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연길(옌지)에서 만난 한 조선족 동포는 "북한에 사는 고모부가 매년 찾아와 옷과 용돈을 받아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6년 전에 그 고모부가 처음 왔을 때는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이 모두 모여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용돈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이 4만위안(720만원) 정도 됐고,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도 잔뜩 챙겨 줬습니다. 30여년 만에 처음 만났으니 생전에 또 볼 수 있겠느냐며 어려운 살림이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싸준 것이지요."
 
"고모부가 언제 북한으로 넘어갔고, 어떻게 연락이 됐느냐"고 묻자 "고모부는 연길에서 출판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신변에 위협을 느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하더라. 그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고모부가 알음알음으로 연락해서 만나게 됐다"고 답했다.

"어렵게 만난 고모부가 자주 오면 좋지 않으냐"고 했더니 "반갑기야 하지만 올 때마다 용돈과 헌옷 등을 줘야 하니…"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은…

중국에서 나선지구에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두만대교. 중국의 훈춘시 권하와 북한의 원정리를 잇는 다리다./ 북한-중국-러시아의 3국 국경이 마주닿아 있는 중국 방천에서 바라본 두만강 모습/ 중국 삼합에서 바라본 북한의 회령시와 두만강(왼쪽부터)
 
◆조선족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북한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선족은 북한에 자유롭게 갈 수 있다. 평양에 가려면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하지만,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여권 없이도 통행증만 받으면 다녀올 수 있다. 동해안의 칠보산과 금강산, 평안도의 묘향산 같은 관광지는 물론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황금평-위화도 경제특구 등지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도 왕래가 이뤄진다. 조선족 학교에서는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다.

또 중국의 랴오닝성과 가까운 압록강 및 지린성과 가까운 두만강 지역에서는 북한사람들이 중국 핸드폰으로 조선족과 통화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보내달라고 하는 거래도 이뤄진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부족한 옷과 식량을 받아다 북한에서 팔아 이익을 남기는 '비공식 국경무역'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뚜렷한 국경선이 없다. 그냥 강이 경계선이다. 중국 쪽에서 배를 타고 북한 쪽으로 다가가도 내리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북한 쪽에서 탈북자를 막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탈북자 방지를 위해 형식적으로 경계를 서고 있을 뿐이다. 휴전선에서 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철책선은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까?
 
하지만 두만강 넘어 조용한 북한의 산하(山河)를 보면 `북한에도 사람이 살까?돴라는 엉뚱한 의문이 떠오른다. 당연히 사람이, 그것도 우리와 생김새도 갖고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이 살겠지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이 떠오르는 건 두만강 건너에 보이는 북한에는 사람 모습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성 용정(룽징)시의 산허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시내에는 제법 높은 빌딩도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만강 너머, 회령시 앞에 있는 산 위에 김정일의 모친인 김정숙씨 기념관이 있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훈춘시 권하(취앤허)세관과 북한의 원정리를 잇는 두만강대교 건너편에서도 인적을 찾기 힘들다. 권하에서 동쪽으로 20분쯤 더 달리면 나오는 방천(팡촨)의 건너편인 북한의 두만강시 모습도 마찬가지다. 제법 넓은 역과 역사인 듯한 건물이 보이지만 여전히 사람은 없다. 마치 그냥 정지해 있는 풍경화 같다.

비교적 차량 통행이 많은 도문(투먼)시에서 바라본 북한의 남양시 모습도 비슷하다. 중국 차량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넘어가고, 북한에 갔던 차량이 되돌아오는데도 북한쪽 세관에선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중국인들이 북한으로 연결되는 다리 중간까지 가서 북쪽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장 먼 곳, 북한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공간적 거리로 따지면 서울의 대척점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근이 가장 멀 것이다. 대척점이란 서울에서 지구 중심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올 때 연결되는 정반대 지점. 기후는 정반대이며 12시간 시차가 난다. 바로 지리적으로 가장 먼 곳이다.

하지만 기준을 달리하면 북극이나 남극, 또는 에베레스트산 등이 가장 멀 수도 있다. 공간적 거리는 대척점보다 가까울 수 있지만, 빙하로 뒤덮여 있어 웬만한 의지력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척점이나 남극은 시간과 의지와 돈이 있으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먼 곳도 아니다.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고, 의지와 시간과 돈도 있는데 갈 수 없는 곳. 바로 북한이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이 아닐까. 현재 한국인으로서 북한에 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통일부에 신고한 뒤 허가를 받으면 방북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돴이 없는 한 방북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가면 `국가보안법돴에 걸려 처벌받는다.

1999년 11월18일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지만, 2008년 7월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단돼 아직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백두산 관광도 시행하기로 합의하고 준비했지만, 박씨의 피격사건으로 무산됐다. 다만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의 직원들이 제한적으로 업무를 위해 오고갈 수 있을 뿐이다.

백두산을 가려면 비행기로 중국 지린성 연길로 자동차를 타고 중국쪽 백두산(중국에선 창바이샨이라 부른다)에서 북한쪽 백두산을 바라봐야 한다.
 
◆남북한 용어 차이에서 느끼는 거리
 
공간적으로, 그리고 마음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정치적으로 아주 먼 북한은 일상용어에서도 아주 멀다. 한국에서 쓰는 말과 북한에서 통용되는 말 가운데 차이나는 게 많다. 장갑은 손싸개이고, 양말은 발싸개다.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고 스킨로션은 살결물, 샴푸는 머리물비누라고 한단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외래어를 한글로 바꿔 부르다 보니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하지만 듣기 민망한 표현도 적지 않다. 백열전등은 씨불알이라고 하고, 형광등은 긴불알이 된다. 가로등은 선불알이며 호텔이나 백화점 로비에 아름답게 장식돼 있는 샹드리에는 떼불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불과 60여년 전만 해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금강산, 백두산, 묘향산.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변해버린 북한이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올 때까지 허리 끊긴 배달민족의 아픔은 계속 커져갈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