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었지만 쓸모없진 않다.” 최근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나오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대사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5편 격인 이 영화에서 아놀드는 미래 인류저항군 리더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어릴 적부터 보살피는 ‘나이 든’ 터미네이터로 분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연로한 외모가 역력했지만 특유의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젊은 터미네이터들과의 육탄전에서 사라를 끝내 지켜낸다. 현실의 아놀드 역시 한국기준으로는 69세. 할아버지로 불릴 나이다. 하지만 그는 1984년 출연 이후 32년 만에 돌아온 터미네이터를 연기하기 위해 평소보다 운동량을 두배 늘리고 몸무게도 크게 불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체력은 아직까지 거뜬하다”고 말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도 늘 자신만의 ‘터미네이터’를 꿈꾼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취업희망자의 비율은 무려 90.1%나 된다. 지난해 전체 노인의 취업률도 28.9%로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업종 자체가 임금수준이 낮은 단순노무직이거나 농어촌 노인 취업자가 대부분(72.7%)이어서 실제 노인들의 취업 의지는 생각 이상으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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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화시대 진입… ‘65세 룰' 조정될까
노인취업문제는 우리나라가 고령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점과 관련이 깊다. 지난 3월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6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정부의 ‘장년 고용종합대책’ 자료를 보면 오는 2017년 전체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이 되는 고령사회로, 2026년에는 5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유엔이 정한 고령화사회 기준에 따른 것인데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7%면 ‘고령화사회’, 14%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노인의 기준나이인 ‘65세’는 우리나라에선 법적·행정적으로도 잣대가 된다. 기초연금법(옛 기초노령연금법) 제3조를 보면 연금수령자의 나이를 65세 이상으로 삼았고 경로우대의 기준이 되는 노인복지법(제26조)에서도 65세부터 경로우대에 따른 할인혜택을 제공토록 했다.
그런데 얼마 전 ‘65세 룰’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당사자는 대한노인회. 지난 5월 이 단체는 정기이사회를 열고 노인 연령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늘려야 한다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앞서 2010년과 2012년 대한노인회는 노인 연령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맞서 두차례나 반대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노인 인구 증가로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는 것을 덜자는 취지에서 이번에는 입장을 선회했다. 이심 대한노인회중앙회 회장은 “2010년만 해도 노인 인구가 540만명이었으나 이제는 650만명으로 늘었다”며 “미래세대까지 생각하는 노인복지정책을 졸속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연령 상향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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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DB |
◆ 왜 일하고 싶은가… ‘전쟁세대’가 겪는 빈곤
대한노인회의 이 같은 논리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해소하자는 취지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년연장’을 통해 노인 일자리를 그만큼 늘려야 한다는 현실적 주장도 담겨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은 6·25전쟁 이전 출생자들이다. 그들의 유년기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경험했고 청년기 또한 산업화 과정에 몸담으며 한국경제의 태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희생세대인 이들의 경제생활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하다. 이는 지난해 전체 노인가구의 연소득이 평균 2305만원인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 역시 지난 2012년 기준 48.5%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회원국 평균보다 4배나 높음에도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최하위권 수준이다. 지난 3월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인의 빈곤과 연금의 소득대체율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5.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65.9%에 한참 못 미쳤다. 주요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80% 수준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시민단체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노년층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조사결과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전체 소득 중 일해서 얻는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6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북유럽 국가들이 12% 내외이고 OECD 평균이 24%인 것과 크게 차이 난다.
이승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한국 노인들은 총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일해서 얻는데 그 일자리마저 저임금이고 불안정하다”며 “결국 노인들이 단순히 ‘활기찬 노후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노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생계비 마련’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1만452명 대상 면접조사)를 분석한 결과 노인의 28.9%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79.3%로 가장 많았다. ‘용돈마련’을 위해 일한다는 노인은 8.6% 뿐. 특히 일하는 노인의 대부분이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은 일에 투입됐는데 농림어업이 38.3%로 가장 많았고 경비·수위·청소 업무(19.3%), 운송·건설업무(10.8%) 등이 뒤를 이었다. 화이트컬러 격인 전문직과 행정사무직은 각각 3.5%, 1.2%로 소수에 불과했다.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노인의 비중도 36.6%로 2011년(26.1%)보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을 하고 있는 노인의 절반 이상(58.8%)은 현재 일자리에 만족했고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근로노인은 14.1%에 그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