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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20·30세대가 ‘푸어’의 개미지옥에 빠졌다. 등록금을 대출받은 ‘학자금푸어’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축은 고사하고 대출금 상환에도 벅찬 ‘워킹푸어’에 내몰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다시 은행 대출에 의존해 거주할 곳을 구해야 하는 ‘하우스푸어’가 되면서 계층 이동의 꿈은 멀어진다. 비싼 돈을 들여 ‘웨딩푸어’로 전락하느니 차라리 평생을 혼자 사는 ‘솔로푸어’가 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30세대의 지극히 평범한 현실이다.
◆푸어 대열로 내몰리는 청년들
‘푸어족’이란 영어로 ‘가난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푸어’(poor)에 무리·집단을 뜻하는 한자 ‘족’(族)을 붙인 말이다. 어떠한 원인에 부딪혀 지속적인 빈곤을 겪는 계층을 지칭한다. 청년들은 20대 초반 학자금 대출로 빚을 떠안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빈곤탈출이 힘든 ‘푸어’의 늪에 빠지게 된다.
2016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푸어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0.4%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이 중 55.2%는 ‘앞으로 푸어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푸어족의 종류와 수는 점점 늘고 있다. 20·30대의 삶을 우울하게 만든 대표적인 푸어는 일을 해도 가난한 ‘워킹푸어’, 신혼집 마련과 비싼 결혼비용으로 가난해진 ‘웨딩푸어’, 자녀 출산과 분유값 등 비싼 양육비, 교육비 때문에 빈곤해진 ‘베이비푸어’ 등이 있다.
문제는 한번 푸어족으로 전락한 청년은 중장년층까지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자녀 교육비 지출로 노후자금 마련이 어려운 ‘에듀푸어’, 생계형 자영업에 내몰린 ‘소호푸어’, 은퇴 후 퇴직금을 프랜차이즈 창업에 써버리고 빈곤층으로 추락한 ‘프랜차이즈푸어’, 은퇴 후 늘어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메디푸어’, 무리한 자녀지원으로 주택자금 등의 부채가 남아 노후생활이 원활하지 못한 ‘실버푸어’ 등 또 다른 푸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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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젊은 세대의 부채 증가가 두드러져 전년 대비 부채 증가율은 30세 미만이 41.9%로 가장 높았다. 20대 가구의 빚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이어 30대의 부채 증가율이 16.1%로 뒤를 이었다. 이는 40대 이상이 1.8∼5.1%의 비교적 완만한 증가세를 보인 것과 대조된다.
◆자발적 푸어의 등장
최근에는 자발적 푸어도 등장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느니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해서라도 현재를 즐기겠다는 이들이 여기 속한다.
결혼 3년차인 임노연씨(37·여·가명)는 지난해 700만원의 카드빚을 내 가족들과 미국여행을 다녀왔다. 은행 대출금 상환, 아이들 양육비, 각종 생활비 등으로 좀처럼 돈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에서 빚을 내 여행을 떠나는 ‘여행푸어’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임씨는 “부모세대처럼 먼저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여행을 가는 게 정상적인 수순이겠지만 앞으로 계획대로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며 “돈을 모아 여행을 가든 빚을 내서 다녀온 뒤 돈을 갚든 순서만 바뀔 뿐 똑같다는 생각에 미국여행을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한번뿐인 인생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욜로’(YOLO) 마인드도 여행의 원동력이 됐다. 카드빚은 여행을 다녀온 후 6개월에 걸쳐 갚았다. 임씨는 “앞으로도 여행은 빚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작은 원룸에 살면서 수입차를 사는 ‘카푸어’도 자발적 푸어의 일종이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입차는 2000년대 말까지 5% 미만의 낮은 점유율을 유지했으나 2012년 10%를 넘어섰고 앞으로 2~3년 내에 2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입차 구매가 늘고 있다. 2011년 30대 이하의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약 2만4000대였으나 불과 3년 만에 3만6000대로 50% 가까이 늘어났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도 성장기에는 오늘보다 나은 미래가 있고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나 저성장 시대에는 그런 믿음을 갖기 어렵다”며 “성장의 공간이 많이 열려있을 때는 노력하면 다 가능하다는 꿈을 가질 수 있지만 성장판이 닫혔을 때는 언제 올지 모르는 내일로 만족을 미루기보다는 오늘을 살자는 의식이 강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1호(2018년 5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