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시장점유율 변화 추이. /그래픽=강지호 기자

"앞으로 2~3년이 관건입니다. 정부의 조속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 35.3%로 선두를 달리던 K배터리는 지난해 14%로 떨어졌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 점유율은 2020년 55%에서 올해 6%대로 급락했고 전기차(EV) 부문 역시 같은 기간 35%에서 20.2%로 내려 앉았다.


한국 배터리 산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짙어지는 가운데, 업계는 "민관이 힘을 합쳐 반드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릴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2032년 세계 배터리 시장 규모가 3946억7000만달러(약 56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두배 수준이다. 최근 배터리 산업은 드론·항공·선박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며 수요처가 늘고 있고 전기차 보급 확대와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배터리 산업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터리는 장거리 운송 시 방전이나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해외 공급처 인근에 생산시설을 세우는 구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배터리 산업은 국내 기여도가 낮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생산시설이 대부분 국내에 있어 정치권의 관심이 높지만 배터리는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오해로 정책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실상과 다르다. 배터리 산업은 한국산 장비와 소재가 대거 투입되기에 해외 생산이 늘어나도 실질적인 경제 효과는 국내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의 국산 장비 비중은 90% 이상이며 핵심 소재의 국산화율 역시 30%를 넘어 국내 산업 기여도가 높다.

배터리에 정치권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국 SK배터리아메리카 공장의 전경./사진=SK온

정부가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국가 주력산업으로 배터리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터리는 셀 제조업체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전반이 긴밀히 연결된 산업으로 국내 기업 간 동반성장이 가능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완성차에서 셀, 소부장, 설비사까지 이어지는 전 밸류체인을 자국 내에서 완비한 국가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배터리 셀 기업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대표적이며 양극재는 에코프로·LG화학, 음극재는 포스코퓨처엠·대주전자재료, 분리막은 더블유스코프·SK아이이테크놀로지, 전해액은 엔켐·솔브레인 등이 주축을 이룬다.

국내 배터리 생태계가 고도화되면서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곧 배터리 소부장 산업의 수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도 형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배터리 기업들 사이에서도 중국산 소부장의 품질 불안정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정밀성과 안정성이 높은 한국산 제품의 수출 효과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실제로 양극재 수출액은 2021년 43억달러에서 2022년 112억달러, 2023년 127억달러로 3년 새 약 3배 증가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배터리 산업의 성장은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2023년 7월 지정한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모두 비수도권에 위치해 지방의 매출 확대와 고용 창출에 기여한다. 현재 ▲청주·울산(배터리 제조) ▲포항(소재) ▲새만금(광물가공 및 재활용) 등이 배터리 특화단지로 지정돼 있으며 정부는 이를 중심으로 지역 균형 발전과 산업 집적화를 병행 추진 중이다.

국회서 계류되고 있는 배터리 법안, '직접환급형 세액 공제' 통과되야

배터리 업계는 더 늦기 전에 일본과 중국 등 경쟁국이 점유율을 빠르게 빼앗고 있어 성장 동력을 잃기 전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지난 2월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2회 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된 모습. /사진=뉴시스

배터리 업계는 더 늦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일본과 중국 등 경쟁국이 빠르게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는 만큼 성장 동력을 잃기 전에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본부장은 "북미 시장 점유율은 상승하고 있지만 유럽 시장은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럽 시장을 50% 수준으로 유지하고 동남아 시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전체 점유율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일본·미국 등과 유사한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업계는 목소리 높였다. 일본과 미국은 생산 촉진 세제를 통해 현금 지원을 하고 각 배터리 기업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한국은 배터리 업계가 수년째 '직접 환급형 세액공제' 등 일본과 미국이 시행 중인 제도를 요구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배터리 업계는 국정감사 이후 열리는 오는 11월 정기국회에서 배터리 세액공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타 업계에서도 세액공제를 요구하면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한미 관세 협정에서 한국의 보조금 문제가 지적돼 통상 마찰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의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