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바다는 무서웠고, 주인공은 완벽했고, 전투는 통쾌했다. 관객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용기를 얻으며 극장을 나왔다. 그 무대, 그 바다의 실체를 보러 간다. 이곳은 울돌목, 명량이다.


 

명량해역 우수영에 있는 ‘고뇌하는 이순신상’
명량해역 우수영에 있는 ‘고뇌하는 이순신상’

◆장군의 뒷모습

그는 바다를 향해 서 있다. 크지 않은 키, 허리엔 칼을 차고, 손에는 지도를 들었다. 고개를 약간 숙였고, 어깨도 조금 처진 듯하다. 거센 바람에 비록 딱딱한 동상이지만 옷자락 끝이 날린다. 그의 뒷모습에서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여행자는 당당하게 호령하는 이순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장면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명량에서 똑같이 재현됐다. 그날 밤 이순신 장군의 생각과 마음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동상에도 영화에도 뒷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닐까.

명량대첩은 이순신의 3대 대첩 중 하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한산대첩에서는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남겼고, 1597년 명량대첩은 울돌목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승을 거둔다. 다음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다.

장군은 임진왜란 중 20회 이상의 해전을 치렀다. 그는 <난중일기> 등 뛰어난 문장을 남겼고, 군사를 독려하는 힘있는 연설가이기도 했다. 글재주와 언변보다는 진심과 충성, 신의에서 오는 가슴의 소리였을 것이다.

“제게 전선이 아직도 12척이나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중략)… 제가 죽지 않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왕을 위로했고, 용기를 줬고, 긍정적인 자신감으로 신의와 충성을 보여줬다. 그는 또 ‘必死卽生(필사즉생) 必生卽死(필생즉사),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전쟁에 임했고 끝내 이겼다. 뛰어난 지략과 열정과 용기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순신 장군처럼 한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겠다. 그 정점을 찍었던 곳이 바로 이 곳 전라우수영, 울돌목이다.

울돌목은 ‘바다가 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것의 한문 표기가 울 명(鳴), 대들보 량(梁)으로 명량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보면 멀리서도 바다 가운데로 소용돌이치며 용암처럼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

물소리도 대단해 과연 바다가 우는 듯하다. 그날은 승리의 외침과 패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있었을 것이다. <선조실록>에는 왜선 31척을 대파했고, 92척이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 수군은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다만 전사자 2명과 부상자 2명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마치 무협지를 보는 것 같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원리였을까. 그는 성웅으로 우리에게 남아, 자주 포기하고 싶어하는 나약한 자손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고 있다.


전라우수영
전라우수영
목포구등대
목포구등대

◆명량대첩지 기념공원, 전라우수영

명량대첩지 기념공원. 이곳은 하나의 커다란 무대다. 이 전투 자체가 너무나 드라마틱한 전쟁극이다. 장군이 남긴 말은 명대사고, 주인공 ‘인간 이순신’의 생애는 파란만장하다. 관객이 된 여행자는 무대를 옮겨가며 그 생애와 전장을 따라간다.

입구에는 명량대첩비가 있는데 이는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세운 비다. 수군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 있고, 충무공 이순신의 구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충무사가 있다. 그리고 충무사 아래에는 우수영 수군 공적비가 있다.

그런데 왠 강강술래 전시관이 있나. 내용을 보니 이곳이 강강술래 발상지이고, 이순신 장군이 이를 고안했다고 한다. 적에게 군사가 많아 보이게 하려고 부녀자들을 모아 빙빙 돌게 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강강술래마저 이순신 장군의 공이라니 말 다했다. 주연, 조연, 스토리, 소품, 노래와 춤까지, 드라마의 모든 것이 있다.

볼 것이 많고 그만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두 가지만 꼽는다. 우선 진도대교 쪽에서 물살의 세기를 보고 듣는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물살이다. 입구부터는 귀를 크게 열어둔다. 거친 물소리가 물가로 걷는 내내 들려 올 것이다. 두번째는 명량대첩탑이나 우수영전망대 쪽으로 올라간다.

위에서 이순신 장군의 마음으로 울돌목을 내려다 본다. 나라면 저 무섭고 거친 바다에 배를 띄울 수나 있었을까.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장군에서 졸병까지 아니 백성까지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쳤다. ‘하나됨’의 가치는 잊혀질 때가 많다. 그렇지만 가끔 그 하나됨이 커다란 감동이나 승리를 안겨줄 때가 있다. 다시 한번 승리의 그날을 상상하게 된다.


울돌목
울돌목
[여행] 울돌목에서 장군을 생각하다

◆일출과 일몰 포인트

해남까지 왔으니 해를 한번 보고 가자. 일출은 땅끝전망대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최남단, 갈두산 사자봉에 있다. 여행자는 한번쯤 ‘땅끝’ 에 서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그리고 많은 여행자들이 ‘일출보기’에 열정을 쏟는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렇지만 ‘해무’가 문제다. 이곳은 바다 위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으로 일출을 놓치기 쉽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아침산책에 나선다. 숙소를 땅끝마을 근처에 정한다면 혹 일출을 못 보더라도 억울함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해를 보지 못해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기가 막히다.

흑일도, 백일도, 동화도 황간도, 마삭도, 노화, 보길도… . 섬들이 수묵담채화를 그리고, 바다 위의 양식장은 줄무늬 물결을 만드는데 이 또한 그림의 완성도를 높인다. 가까이 소나무가 그림의 테두리가 되고, 안개 위로 조금씩 밝아지면 수묵화에서 채색화로 세상이 바뀐다. 물론 붉고 동그랗게 뜨는 해를 본다면 큰 행운으로 여기고 바다에 감사하면 될 일이다.

해남의 최서북단에는 목포구등대가 있다. 이곳은 일몰포인트이다. 등대는 일본이 대륙진출을 하려고 1908년에 만든 것으로, 지금 쓰이고 있는 등대는 2003년에 새로 지었다. 그리고 옆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100년 된 ‘목포구등대’가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목포구등대가 있다. 그런데 여기는 목포도 아니고, 게다가 새 등대나 옛 등대나 모두가 ‘구등대’라니 헷갈릴만하다. ‘목포구등대’의 ‘구’는 옛날을 뜻하는 구(舊)가 아니라 ‘목포항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뜻의 구(口)다. 일본은 이곳을 통해 목포항을 수탈하려고 했나 보다. 사연을 알고 봐서 인지 일몰이 상당히 쓸쓸하게 느껴진다. 항구 쪽으로 대형 선박이 지나는데, 해 그림자를 그리는 고깃배의 정겨움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서는 이것을 ‘주광낙조(周光落照)’라고 하여 해남의 명품신관광 8경 중 하나로 꼽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3개의 바다를 봤다. 격랑의 바다, 그림 같은 바다, 쓸쓸한 바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투로 여행자에게 말을 건다. 용기, 치열함, 고요함, 쓸쓸함…. 어르고 달래고 위로하는 바다에서 감성의 근육을 키우고 간다.

● 여행 정보

☞ 명량대첩지 기념공원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 - 서천공주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삽진고가교 진입 후 고하대로 - 목표대교 - ‘진도, 해남’ 방면으로 좌회전 - 신랑로 - 영암2교차로에서 ‘진도, 해남’ 방면으로 우회전 - 대불로 - ‘우수영관광지, 유스호스텔, 명량대첩공원’ 방면으로 좌회전 - 안골길 – 관광레저로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명량대첩지 기념공원: 검색어 ‘우수영국민관광지매표소’, ‘명량대첩비’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관광레저로 12
땅끝전망대: 검색어 ‘땅끝전망대’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산45
목포구등대: 검색어 ‘구목포구등대’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봉길 582

< 주요 정보 >
해남문화관광
http://tour.haenam.go.kr / 061-530-5919

명량대첩지 기념공원
061-530-5541
입장료: 어른 1000원 / 청소년 700원 / 어린이(7세 이상) 500원

땅끝전망대
061-530-5544
땅끝모노레일: 송호리 해변에서 전망대까지 운영(15분 간격) / 061-533-0121
모노레일 왕복 요금: 어른 5000원 / 청소년 4000원 / 어린이 3000원

구목포구등대
061-532-1330

< 음식 >
중앙식당: 반찬 하나하나 전라도 특유의 손맛이 좋다. 백반도 유명하고 계절에 따라 맛보는 연포탕, 꽃게탕도 맛있다. 백반 한그릇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곳이다.
생선찌개백반 7000원 / 불낙 1만3000원
전남 해남군 송지면 산정1길 69-1 / 061-533-2146

< 숙소 >
우수영 유스호스텔: 세미나·수련회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고, 체험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최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유스호스텔이다.
문의전화: 061-533-2114
http://www.usuyeong.com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관광레저로 12-36

땅끝오토캠핑리조트: 송호 해수욕장 앞에 있어 바다를 즐기기도 좋고, 모노레일을 타고 바로 땅끝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 야영장과 캐라반을 이용할 수 있다.
문의전화: 061-534-0830
http://autocamp.haenam.go.kr/ /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산길 25-1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