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8월20일 오전 8시50분께 하나금융 본사 로비에서 <머니위크> 기자와 만나 던진 말이다. 그는 "요즘 정신없으시겠다"고 묻자 "애들이 저래 시끄럽게 그러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시 하나금융 본점 맞은편에는 하나은행 노조가 조기통합 반대집회를 열고 있었다.
통합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 집무실로 찾아 뵙겠다고 전하자 그는 옅은 웃음만 남긴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와의 짧은 만남 이후 약 한시간 후 김 회장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지금은 회의중입니다'라는 문자만 되돌아왔다. 끝내 그의 연락은 받지 못했다.
김정태 회장이 이날 출근길에 불편한 기색을 보인 이유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에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 8월19일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합을 위한 양행 은행장 선언식'을 가졌다.
두 행장은 선언문에서 "그동안 두 은행은 직원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통합에 대해 소통했고 노조와도 성실한 협의를 위해 대화의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앞으로도 양행 노조와 지속적으로 성실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회장이 지난 7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의사를 내비친 지 한달여 만에 양 행장이 조기통합을 공식화한 것이다. 양 은행은 이번 선언을 통해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이사회 결의 후 통합추진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또 주주총회를 거쳐 통합 안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최종 통합까지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이 절차까지 마무리된다면 '한 지붕 두 가족'에서 실질적인 '하나은행'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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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뉴스1 |
◆M&A로 성장 거듭한 하나은행
하나은행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꾸준히 성장을 이뤄왔다. 하나은행의 전신은 한국투자금융. 1971년 6월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은 순수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 비은행 금융기관이다. 당시 직원은 30명이 채 안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이후 1991년 7월 은행업 인가를 받고 지금의 하나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운 시기는 1998년. 당시 '조상제한서'로 상징되던 대형은행들이 IMF 외환위기로 대거 위기에 몰리자 하나은행은 본격적인 M&A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주요 타깃은 자신의 몸집보다 큰 대형은행이었다.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했고 이듬해인 1999년 1월에는 보람은행과 합병했다. 2002년에는 민영화를 추진한 서울은행과 하나가 됐다. 하나은행(H)과 서울은행(S), 보람은행(B), 충청은행(C)의 앞글자를 따 '한국의 HSBC'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2010년 11월에는 미국계 사모은행 론스타로부터 지금의 외환은행을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당시 매입한 외환은행 지분은 51%. 하지만 어렵게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에도 두 은행의 통합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하나·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2.17 합의서로 인해 두 은행은 좀처럼 시너지가 나지 았았다.
2.17 합의서는 2012년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에 인수될 당시 5년 이후 합병논의, 외환은행 명칭 유지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하나금융·외환은행·외환은행 노조·금융위원회가 2월17일 서명한 문서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은 저금리 기조에 따른 은행 환경이 악화되자 결국 지난 8월19일 조기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리딩뱅크 꿈 이룰 수 있을까
김 회장의 전략대로 두 은행이 합쳐지면 총자산 300조원이 넘는 거대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6월 말 기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총자산은 각각 194조원, 146조원이다. 따라서 양 은행이 통합하면 총자산은 340조원으로 껑충 뛴다. KB국민은행(292조원), 우리은행(273조원), 신한은행(263조원)을 뛰어 넘는 수치다.
총여신 규모도 1위에 오른다. 하나은행(129조원)과 외환은행(80조원)이 통합할 경우 총여신 규모는 209조원으로 KB국민은행(200조원), 우리은행(180조원), 신한은행(170조원)을 앞서게 된다.
국내 점포 수는 3위로 뛴다. 하나·외환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975개로 KB국민은행(1151개)과 우리은행(993개) 다음으로 많아진다. 특히 외환거래부문에서 경쟁력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의 외환수수료 이익규모는 지난 2011년 2180억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2006년 우리은행에 1위 자리를 내준 뒤 분기마다 엎치락뒤치락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하나·외환은행 통합 후에는 다시 1위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해외영업망의 범위 역시 독보적으로 확대된다. 2분기 말 현재 단일은행 기준 해외영업망을 가장 많이 확보한 곳은 외환은행으로 총 23개 국가에 법인·지점·출장소·사무소 등 92개 네트워크를 보유 중이다.
여기에 하나은행의 네트워크를 합치면 총 24개국 128개로 늘어난다. 실제로 하나금융지주는 올 상반기 그룹 전체 당기순이익의 17.7%를 해외영업에서 거뒀다. 이는 다른 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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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통합… 노조 달래기 급선무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하나·외환은행 노조가 조기합병 반대 및 협상요구 거부 등으로 조기통합 반대에 나서고 있어서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과 김강묵·박근배 부위원장은 지난 8월20일 합병 저지를 위한 의지 표시로 삭발까지 강행했다.
하나·외환은행 노조는 "조기통합 결정은 2.17 합의서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5년 독립경영 약속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근용 위원장은 "하나금융이 노조와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조기합병을 선언했다"며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경영진은 지금까지 한번도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 역시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기통합 승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래 진정한 통합을 이뤄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올해 하나금융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