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하면 '흑산도아가씨' 노랫말이 떠오른다. 목포에서 두시간을 달려 흑산도 선착장에 배를 내리면 흑산도아가씨의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진다. 일주도로 여행은 흑산도아가씨와 함께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다. 흑산도 시리즈의 시작은 이것으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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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여행 |
◆흑산도아가씨
흑산도를 찾는 여행자는 열이면 열 '흑산도아가씨노래비'에서 사진을 찍는다. '흑산도아가씨'는 1969년에 개봉한 동명 영화의 주제가인데 노래 가사가 한편의 애절한 시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파시다. 어업전진기지였던 흑산도에서는 계절마다 조기, 고래, 고등어 파시가 열리곤 했다. 항아리처럼 생긴 흑산항에 배가 모여들면 한창 때는 2000대 가까이 들어와 배 위에서 직접 장사를 했다. 빼곡히 모여든 배들이 불을 밝히니 바다 위에 도시 하나가 생긴 듯도 하고 선착장이 있는 예리항에서 진리까지 배를 밟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외지인이 많게는 3000여명 몰려들었고 식당과 술집이 번창했다. 이에 종업원 아가씨들을 육지에서 데려왔는데 그 수가 400~500명이었다. 선술집 아가씨들은 저녁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항구에 나와 호객행위를 했다. 그 여인들의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사연과 눈물이 있었을까.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처녀들 또한 흥청거리는 항구를 바라보며 막연히 육지를 동경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게 섬을 지키던 처자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자유롭게 들고 나는 물결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밀려오는데 그저 먼 곳만 바라보다 검게 타버렸을 여인의 마음, 그 애타고 답답한 마음이 노래에 담겼다. 그 때문인지 '흑산도아가씨노래비'는 바다가 멀리 보이는 상라산 정상 근처에 있다. 1997년에 세워졌고 2012년에는 가수 이미자씨가 흑산항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핸드프린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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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도아가씨 노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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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아가씨 노래비에서 보이는 흑산항 전망 |
한편 심리초등학교도 이 노래가 만들어지는 데 한몫했다. 작곡가 고 박춘석과 작사가 정두수가 영화 주제가를 고민하던 때에 고 육영수 여사가 해군 군함을 주선해 흑산심리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들은 흑산도의 '검은 뫼 섬'이라는 이미지와 그리움을 가진 섬 여인들의 한을 결합시켜 노랫말을 지었다.
중앙방파제에는 '흑산도아가씨동상'이 있다. 이 또한 가수 이미자가 공연을 했던 2012년에 세운 것으로 폭 1m, 높이 1.65m의 정감 있는 흑산도 아가씨의 모습이다. 발 아래 흑산도의 홍어까지 표현한 친근한 동상으로 최근 흑산도를 찾는 여행자들의 기념촬영 포인트가 됐다.
◆일주도로 여행
흑산도는 한 이틀 머물다 가기엔 짧고 아쉽다. 일주도로 역시 두어시간 차 타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관광객 대부분이 아침부터 차 타고 배 타고 다시 차를 탔으니 참으로 바쁘고 피곤한 여행길이다. 꼬불거리는 언덕을 오르다 보면 울렁증이 생겨 거침없이 쏟아내는 가이드의 이야기도 들리다 말다 한다. 자유여행자라면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며 꼼꼼히 살펴보면 될 일이고 단체여행이라 하더라도 조금 더 알고 가면 흑산도의 길과 바다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택시관광을 할 경우 기사의 일정대로 이끌려 갈 것이 아니라 원하는 포인트를 요구하며 흑산도 탐험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자.
1. 샘골해안, 간첩동굴 = 6·25 이후 북한 남파 간첩의 규모와 빈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1968년 이후에만도 300건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흑산도 간첩선 침투 사건이다. 북에서 보낸 간첩이 남한의 북쪽 지역도 아니고 서남단 섬까지 내려왔으니 이곳 주민들은 불안·공포와 함께 놀라움까지 느꼈을 것 같다. 1969년 7월12일 북한 무장간첩 3명이 침투한 해안이 흑산도 비리에 있는 샘골해안이고 그들이 은신했던 곳이 간첩동굴이다. 3명의 간첩은 모두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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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로 |
2. 하늘도로 = 하늘도로는 멀리서 봐야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절벽에 삐죽 선반을 달아 놓은 것 같아 ‘선반도로’라고 하는 이 길은 상라산 전망대 팔각정에서도 볼 수 있고 간첩동굴을 지나 곤촌으로 가는 방향에서 보이기 시작해 홍합치까지 이어진다. 일주도로를 만들 때 흑산도에서 가장 높은, 문암산 깃대봉에서 내려오는 깎아지른 절벽 때문에 길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각 없이 절벽에 매달 듯이 다리를 만들었다. 48m 가량 이어지는 도로 벽에 흑산도와 신안의 명물들을 그려 알록달록 리듬감 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3. 할미재약수 = 문암산약수는 할미재약수로 더 유명하다. 물이 부족한 섬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으니 지나는 이의 소중한 쉼터다. 이 물에는 더덕을 비롯한 약초 성분이 함유돼 약수를 마시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4. 일주도로 준공기념비와 현충탑 = 한다령에는 천사상이 있다. 이것은 ‘일주도로 준공기념비’로 1984년에 시작해 2010년 3월에 완공한 일주도로를 기념하는 것이다. 흑산도를 크게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는 흑산도 11개 마을을 지난다. 27년 만에야 완공된 일주도로 덕분에 마을과 마을을 오가기가 편해졌고 일주관광 또한 가능해 졌다. 천사상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1004개의 섬을 가졌다는 신안군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면서 흑산도와 일주도로를 지키는 수호신이자 흑산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기념비가 있는 한다령은 ‘한이 많은 고개’라는 뜻으로 상라봉의 반대편에 있다. 상라봉에 굽이굽이 오르막길이 있는 것처럼 이쪽에도 일명 ‘꼬부랑고개’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 천사상에 서서 바다를 보면 오른쪽 멀리 홍도가 보인다. 이곳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흑산 바다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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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유허비 |
5. 최익현유허비 = 흑산도 전촌리에는 최익현 유허비가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1876년 ‘병자수호조약’과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병자지부소>를 올려 일본과의 조약체결을 반대했고, 이 때문에 흑산도로 유배됐다. 선생은 이곳에서 2년 정도 유배생활을 하며 진리에 일심당(一心堂)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고 이곳 전촌리로 옮긴 후에도 서당을 지어 후학 양성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 천촌마을 손바닥바위(지장암)에는 선생이 손수 새겼다는 '기봉강산 홍무일월'(萁封江山 洪武日月) 이라는 글씨가 남아있다.
유배 후에는 을사늑약에 반대해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순창 싸움에서 패해 일본 쓰시마로 압송됐다. 선생은 일본 감옥에서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다가 1906년 11월17일 굶어 죽었다.
선생 사후 1924년에 문하생이었던 오준선, 임동선 등이 이곳 지장암 아래 유허비를 세웠다.
[여행 정보]
흑산도 가는 법
목포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 이용
승선시간: 오전 7시50분, 8시10분, 오후 1시, 오후 4시
운항시간: 2시간
운임: 일반 3만4300원 / 중고생 3만1100원 / 경로 2만7800원 / 소아 9650원
문의: 061-243-2111~4 / 061-275-8111
예매·출항 해운사 사이트
가보고 싶은 섬(한국해운조합) http://island.haewoon.co.kr
남해고속훼리 http://www.namhaegosok.co.kr
동양고속훼리 http://www.ihongdo.co.kr
목포여객선터미널 1666-0910
일주관광
택시: (1대) 6만원 / 010-3747-9717
버스관광: (1인) 1만5000원 / 061-262-7888
● 음식
대박식당: 홍어회 등 흑산도 대표 음식도 있지만 백반 메뉴가 있어 가볍게 식사하기도 좋다.
대박세트(삼합, 전복, 동태탕) 10만원 / 전복죽 1만2000원 / 백반 8000원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예리 1길 52 / 061-284-9909
● 숙박
게스트하우스 흑산도: 흑산도 지킴이를 자처하는 주인장이 열정으로 손수 가꾼 숙소다. 조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 개별여행자들에게 좋다.
예약문의: 010-7107-5252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흑산일주로 23-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