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끊이지 않는 제약사 리베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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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의약품을 처방받을 때 환자는 의사가 써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한다. 최근 필자는 처방전을 들고 병원이 있는 건물 안의 약국을 찾았다. 약사가 물었다. “이 약(A제품)이 들어오지 않아 없는데 다른 약(B제품)을 드릴까요? 아니면 의사에게 다시 처방전 받아 오시겠어요?” 간단한 증상이고 약 가격이 똑같아 다른 약을 달라고 한 후 집에 와서 똑같은 증상일 때 지금까지 처방받아 먹던 약과 비교해봤다.

두가지 약의 박스에 쓰인 약 성분의 화학적 명칭과 한알당 들어있는 함량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후 병원에 갔을 때 지난번에는 A제품이 아닌 B제품을 먹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고 처방전에 적힌 약은 예전부터 처방해주던 A제품이었다.

이번에는 약국 약사도 처방전의 약을 내줬다. 그 약이 지난번에 잠시 없었다가 이제는 들어온 거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A제품과 B제품이 완전히 똑같은데 그 병원에서는 늘 A제품만을 처방해준 이유가 궁금했다. 성분과 함량은 똑같더라도 뭔가 다른 차이가 있다면 의사의 재처방 없이 약사가 임의로 다른 약을 권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다.

복제약(제네릭)은 품질에 차이가 없다 보니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활용하는 영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의사 처방이 필요하고 TV와 언론매체에 광고를 안하는 전문의약품에 리베이트가 많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회사 차원에서 리베이트자금을 지원했으나 요즘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그 돈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제약은 연구개발비가 들지 않아 마진이 충분히 확보되는 만큼 리베이트를 제공해서라도 많이 팔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따라서 리베이트 관행의 뿌리가 생긴 데는 보험약가를 높게 책정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정부가 건강보험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체제를 마련하면서 제약업계 및 의료계와 암묵적인 합의로 보험약가를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리베이트가 생기기 쉬운 구조 속에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는 관습적으로 이뤄졌고 의약분업이 실시된 후에도 계속됐다.

◆리베이트사건의 역대 최고기록들


리베이트사건에 대한 조사도 꾸준히 이뤄졌다. 대표적으로 D제약사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900여개 의료기관에 50억7000만원을 제공한 당시 역대 최대규모의 리베이트사건을 들 수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2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열린 1심 재판에서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제약사와 에이전시는 약사법 위반으로 2000만원 벌금형을,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료인 14명은 의료법 위반으로 300만~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은 2012~2014년 D사의 처방실적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던 2010~2011년에 비해 10분의1 이하로 줄어들어 리베이트가 실적 증가에 크게 기여했음을 정황적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5월에는 56억원에 달하는 불법 리베이트사건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또 다시 최대금액을 경신했다. P제약사 대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사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조건으로 영업사원을 통해 전국 병·의원 의사에게 현금과 상품권 등 총 56억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P사로부터 300만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의원 관계자 수는 274명에 달한다. 이 중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S씨는 P사로부터 3억600만원을 수수해 개업의 리베이트 수수사건 중 역대 최고금액을 기록했다.

S씨는 간질환치료제로 C제약사 제품을 처방해오다가 C사에서 리베이트를 끊겠다고 알려오자 2009년 8월 S씨의 부인이 P사 영업사원과 접촉했다. 간질환치료제를 바꿀테니 처방금액의 30%를 리베이트로 달라고 요구해 2014년 6월까지 리베이트를 받다가 발각됐다. S씨는 2003년에도 의약품 처방 리베이트로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다시 적발돼 이번에는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6월 드러난 Y제약사의 리베이트사건으로 제약사 임직원 161명, 의사 292명, 병원 사무장 38명 등 총 491명이 검거돼 총 검거자 수 역대 최대기록을 세웠다. Y사 임직원들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유명 대형병원, 개인의원, 국립병원 등 전국 1000여곳 의료기관의 의사에게 ‘선·후지원 및 랜딩비’ 명목으로 의약품 처방액의 5∼750%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리베이트 총 규모는 45억원대에 달한다. Y사는 2012년에도 대규모 리베이트 제공사실이 드러나 현직 제약사 대표로는 사상 처음 구속기소되는 불명예 기록도 남겼다.

올 들어서도 제약업계 대상으로 리베이트 수사가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견제약사 H사가 자사 의약품 처방을 대가로 대형 병·의원에 거액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이 포착돼 1월에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대기업 계열사인 L사도 의약품 거래내역이 담긴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장부 등을 검찰에 압수당했다.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해 진료의 의학적 적정성을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직 평가위원이 대형제약회사들로부터 금품수수를 받은 ‘억대 로비’ 파문도 불거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다양한 리베이트 수법들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리베이트수법도 지능적으로 진화했다. 리베이트 수단으로 제공되는 것은 현금, 상품권, 유럽의 명품지갑, 골프채, 가족해외여행권, 법인카드 대여 등으로 다양하다. 심지어 휴대전화 개통, 빵 배달, 자녀의 등·하교 픽업, 의료기관의 컴퓨터 수리 등 허드렛일까지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도 제약사 영업사원으로부터 이 같은 감성영업으로 매출을 많이 올렸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해외에서 제품설명회나 학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의사들을 초빙한 후 실제로는 골프와 관광 접대를 한다. 의사가 거주할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임대해 월세를 대신 내주는 방법도 사용된다. 의사가 논문 번역을 하지 않았지만 논문 번역비로 돈을 지급하기도 한다.

리베이트를 제공할 의사와 금액을 정해 대행업체에 넘기면 대행업체가 이들 의사에게 형식적으로 의약품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설문에 응해준 대가로 돈을 송금한 사례도 있다. 해외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제약사 N사는 의약전문지의 취재를 빌미로 의사들을 호텔 등 고급식당으로 초대해 1인당 30만~50만원 상당의 참가비를 지급하고 전문지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매달 100만원 상당의 자문위원료를 지급했다. 식당에 전문지 기자는 오지 않았으며 해당 의사들은 전문지에 자문도 거의 하지 않았다.

리베이트 명목은 기존 처방을 유지하고 늘리는 대가인 ‘선·후지원금’, 신규의약품을 정착시키기 위한 ‘랜딩비’로 나뉘는데 랜딩비의 리베이트규모가 훨씬 더 크다. 의사들은 리베이트를 받다 적발됐을 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해 병원사무장, 배우자 등 제3자를 내세워 금품을 받기도 한다.

리베이트용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지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회사 법인카드로 상품권 등을 구입한 후 되파는 수법 ▲인터넷 오픈마켓에 직접 상품을 올려놓고 법인카드로 결제한 뒤 현금화하는 수법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판매금액 일부를 빠뜨린 채 신고한 후 전국 도매상에 할인해 판매하고 할인된 금액만큼 리베이트자금을 확보하는 수법 등이 있다.

현행 약사법상 제약사가 도매상에게 의약품을 할인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별도의 처벌규정 없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거나 1~6개월의 판매업무 정지조치를 받을 수 있다.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근절

정부는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2010년부터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업체와 이를 받은 의사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했다. 2014년부터는 동일 의약품에 대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다가 처음 적발되면 보험급여를 정지시키고 두번째 적발되면 급여대상 목록에서 아예 퇴출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도입했다. 리베이트 의약품의 판매금지기간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그러자 법망을 피해 더욱 은밀하게 뒷거래하는 곳이 생겼다. 지능적인 방법으로 리베이트 제공을 강요당하다가 회사를 그만두는 영업사원이 있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리베이트 처벌기준이 여전히 느슨해 효과가 적다고 지적한다. 부과되는 벌금액수를 보면 리베이트규모에 비해 적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도 과거에는 제약업계의 불법 리베이트가 극성을 부렸는데 1990년대부터 해당 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완전히 중단하고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면서 근절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처벌기준을 재검토하고 제약업계는 자체적인 자정노력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리베이트로 의사들을 유혹하는 불법 마케팅이 아니라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하고 의사들도 의약품 선택을 조건으로 제약사에 먼저 금품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리베이트가 현행법상 엄연한 범죄행위임을 인식하고 비정상적인 소득을 올리려는 일부 의사들이 의식을 개선해야 리베이트가 근절될 것이다.

또 사람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리베이트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검토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제약업계 상위사로 신약개발에서 많은 성과를 올린 한미약품도 창립 후 성장시기에는 리베이트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약개발은 10년쯤 걸리는 데다 수백억원 이상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한 중소형제약사는 감당하기 힘들다. 따라서 복제약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복제약은 효능으로 차별화하기 힘들어 영업력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검찰이 일시적으로 집중단속을 해도 리베이트의 뿌리를 없애기는 힘들다. 윤리성 강조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고 아직 규모는 작지만 능력 있는 제약사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을 늘려 펀더멘탈 측면의 경쟁력 향상을 도와주는 것도 리베이트를 줄이는 길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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