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7코스 2구간 은평둘레길
산새마을, 봉산봉수대, 수국사… 봉산 아우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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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중턱에 자리한 산새마을. /사진=박정웅 기자 |
겨울로 향하는 길목, 산새가 둥지로 돌아온다. 서울 은평구 산새마을은 산새의 지저귐이 청량한, 이름도 예쁜 마을이다. 사위가 굳어가는 겨울 모퉁이, 하지만 다정다감하게 더불어 사는 마을엔 이야기꽃이 싱싱하다. 산새마을은 달동네였다. 저마다 사연을 싣고 달과 가까운 산자락에 깃들어 산새처럼 둥지를 틀었다. 상처난 것들이 숨죽여 생채기에 새 살을 돋게 하듯, 사람들 또한 그 산자락에서 지긋이 새로운 삶을 길러냈다.
도시재생사업의 본보기가 된 산새마을. 이곳저곳 벗어둔 허물들을 스스로 거둬들이며 재개발 딱지를 떼어냈다. 개사육장과 도축장의 응고된 피고름은 거름이 돼 꽃과 벽화를 틔웠다. 마을농원의 배추와 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튼실하게 자랐다. 이 푸른 것들은 이번 김장철에도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졌다.
삶이 고단한 건 정처 없던 가난 때문만이 아니었다. 산새마을 일대는 ‘고자골’(高子谷) 또는 ‘고택골’(高宅谷)로 불렸다. 어떤 연유에서 한자가 뒤바뀐 건지 알 길 없으나 고자골의 흔적은 여전하다. 봉산(208m) 중턱, 산새마을 양지 바른 곳엔 내시부 상세(內侍府 尙洗) 심득인(沈得仁)이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서울둘레길 7코스 2구간(봉산입구-구파발역 9.3㎞)은 봉산과 앵봉산이 축이다. 이 중 봉산 둘레길에는 살아온 세월을 굽어보는 산새마을이 있다. 또 산새가 좋아하는 팥배나무 군락지, 황금법당 수국사, 봉산봉수대도 쉬어가라 한다. 지난 11월18일 봉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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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내시 심득인의 묘.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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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텃밭과 산새마을 골목길 전경. 산새텃밭 한쪽엔 내시 심득인의 묘가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 산새마을과 내시 심득인
몸을 낮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산새마을이 환하게 반긴다. 산새마을은 주민과 지자체의 협력으로 친환경 마을공동체로 거듭났다. 곳곳에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벽화가 있다. 산책하면서 골목마다 어떤 벽화를 만날지 두근거린다. 마을회관인 산새둥지는 마을사람들이 운영한다. 카페, 목욕탕,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둘레길 탐방객의 쉼터로도 쓰인다. 산새텃밭(산새마을농원)은 산새마을의 산증인이다. 쓰레기가 가득했던 곳이 주민의 힘으로 텃밭이 됐다. 고구마캐기, 배추심기 등 활력 있는 체험활동이 산새마을의 자랑거리다. 마을사람들은 김장철 수확한 배추와 무 등을 어려운 이웃에게 다시 나눈다.
봉분 하나, 빛이 드는 산새텃밭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조의 내시 심득인의 묘다. 상석에 그의 직책과 이름이 적혀있다. 이 일대가 고자골이라고 전해진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퇴역한 내시는 궐을 떠나야 했는데 많은 이가 궐과 가까운 북한산 서북쪽에 자리를 잡았다. 심득인의 후손은 막연하다. 하지만 그는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황량한 산허리를 칭칭 감은 칡덩굴처럼 삶의 끝자락을 단단히 동여맨 산새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술을 따른다. 산새마을에선 몸을 낮추자. 서촌이나 북촌에서의 낯간지러운 행위나 바삐 살아온 탓에 잊었노라 했던 ‘상식’은 이쯤에서 되돌려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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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임씨의 시 '산새마을'이 적힌 벽화.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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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마을엔 정감 있는 벽화가 많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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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에도 산새마을을 알리는 벽화가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산새들이 살며시 내려와/ 물 한모금 마시고/ 푸드덕 푸드덕/ 노래하며 하늘을 난다
따뜻한 사람들이/ 땀 흘려 일구어 놓은 텃밭에는/ 이웃간의 정을 먹은/ 어린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 저마다 키를 잰다
산새소리 그득한 동네 사랑방/ 왁자지껄 웃음소리/ 여기는 사람사는 동네/ 산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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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 군락지.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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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 군락지와 둘레길. /사진=박정웅 기자 |
◆ 팥배나무 생태군락지
이름 낯선 팥배나무는 회갈색 껍질(수피)이 단단한 배나무를 닮았다. ‘팥’은 작다라는 의미로 덧붙여진 듯하다. 개복숭아, 개살구처럼 말이다. 팥배나무는 한국이 원산인 낙엽활엽교목이다. 다 자라면 높이가 15m에 이른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타원형이며 뒷면은 흰빛이다. 흰 꽃은 5~6월에 피고 황적색 열매는 9~10월에 맺힌다. 열매는 시큼한 맛이 강해 새들이 즐겨먹는다.
산새마을에 산새가 많은 것도 팥배나무가 많아서일까.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의 팥배나무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마사토양에서 생육하는 대표적인 자생수목이다. 숲 내부에서는 참나무와의 경쟁에 밀려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주변에는 자작나무, 마가목, 기막살나무, 고광나무 등이 생육 중이다. 팥배나무 군락은 수색산에서 산새마을로 향하는 둘레길 중간 지점에 있다. 나무테크길이 헐벗은 팥배나무 빼곡한 봉산 사면에 걸쳐있다. 수국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에도 팥배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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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봉수와 봉산정.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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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법당으로 유명한 수국사. /사진=박정웅 기자 |
◆ 봉산봉수와 황금법당 수국사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룬 봉산(烽山)은 서울 무악봉수(毋岳烽燧)로 이어지는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으로 치면 기간통신망인 봉산봉수를 <세종실록>은 서산봉화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봉현봉수로 지칭했다. 서쪽의 고양시 고봉산 봉화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남쪽으로 수도 한양의 안산(鞍山) 서봉수대에 전달했던 축이었다. 또 봉수대 자리는 1919년 3·1운동 때 인근마을 주민들이 횃불을 들었던 역사의 장이다. 봉산의 또 다른 이름은 봉령산(鳳嶺山)이다.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평화롭게 앉아있는 듯한 형상에서 유래했다. 능선 북쪽으로 서오릉과 수국사를 품었다. 초라한 산세에 비해 자랑거리가 꽤나 있다. 봉수대와 팔각정(봉산정)은 2011년 새롭게 축조됐다.
수국사(守國寺)는 황금법당으로 잘 알려졌다. 이 절은 1459년 세조의 큰 아들인 숭(崇, 덕종)의 왕생을 위해 지어진 정인사(正因寺)의 후신이다. 1417년 규모가 작다고 지적한 덕종의 부인이자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의 명으로 다시 지어졌다. 당시 119칸의 규모로 봉선사(奉先寺)와 쌍벽을 이뤘다고 한다. 이후 서오릉의 숙종과 인현왕후가 안장된 명릉의 능침사찰로 지정되면서 이름도 수국사로 바뀌었다. 한국전쟁으로 옛 모습을 잃었으나 중창이 거듭됐다. 1995년 황금보전은 기와 외에 법당의 모든 것이 순금으로 지어져 화제가 됐다. 또 보물 제1580호인 고려후기 불상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서울둘레길 7코스 2구간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다. 특히 지하철 6호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증산역이나 새절역, 구산역을 중심으로 계획을 짜면 된다. 완보가 목적이 아니라면 구간을 나눠도 좋겠다. 산새마을은 새절역 은평마을버스(10번) 종점이다. 여력이 있다면 남쪽으로 7코스 1구간인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문화비축기지를 둘러봐도 좋다. 북쪽 서오릉과 앵봉산을 지나 북한산 자락에 접어들면 또 다른 내시들이 잠들었던 8코스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6호(2017년 11월29일~12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