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7주간 특히 몰입한 일이 있었다. '에세이 쓰기' 오프라인 수업 강사를 맡아서 정성을 기울였다. 당초 강의 소개 글로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건 정성을 다해 본 경험"이라고 독려했는데 이번 경험으로 나도 조금은 더 나아간 것 같다. 강사로서 대단한 가르침을 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수강생들과 함께 힘을 모아 좋은 수업을 만들었다고 자평해본다. 우린 모두 정성을 다했다. 나는 줄기차게 쓰기를 격려했고, 그들은 반강제적 마감시한에 맞춰 꼬박꼬박 과제를 제출했다.
내겐 목적이 있었다. 컴퓨터의 빈 화면 앞에서 느낄 법한 막막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글을 시작하는 힘과 마무리 짓는 의지가 몸에 배도록 돕고자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충실히 글로 표현하면서 좋은 꿈을 꿀 수 있길 바랐다. 과제로 제출된 글들을 매번 꼼꼼히 읽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글이기보다 마음을 읽고 있다고 여겼다. 내가 할 수 있는 멋진 일이었다. 메일로, 손편지로 보내온 다정한 말들에서 주고받는 사랑을 느꼈다.
첫 수업을 시작하며 '줄탁동시'(啐啄同時)하자 했다. 병아리는 안에서, 어미 닭은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 마침내 알을 깨는 일. "나는 조력자가 되어 밖에서 열심히 도울 테니, 여러분들도 안에서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르치는 이를 만나는 목적은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헤르만 헤세의 말대로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데미안')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사람에게 손 내밀 수 있는 영광은 정말이지 큰 영광이었다.
줄탁동시의 의미는 결국 사랑이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한 해답 몇 가지를 갖고 임했다. 지난날 내 세계 밖에서 함께 껍질을 쪼아줬던 선생님들이 앞서 보여줬거나 내가 그들에게 기대하곤 했던 답들이었다. '구체성', '반복', '기대'. 조력은 일단 구체적이어야 한다. 뭘 잘했고 못했는지, 어떻게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배우는 쪽이 자기 답을 그야말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돕는 길이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조력은 조력이 아니다. 실행을 반복하도록 독려하는 일도 조력자의 몫이다. 반복적 실행이 습관으로 굳어질 때 비로소 홀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대해 줄 것. 당신이 원하는 만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날들을 떠올렸다.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첫 수업 때 헤세의 '데미안' 서문을 나눠줬다. 저 문장에 유독 마음을 담았다. 알을 깨고 자라면서 자신에게 이른다. 7주 후, "나를 닮은 내 글을 쓴다는 건 정말 달콤한 일이었다"는 수강후기를 읽었다. 잔잔한 기쁨이 차오른다.
조민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