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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피임약 대상도 여성에서 남성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존 피임법은 대부분 여성에게 국한됐다. 남성의 경우 콘돔·정관수술 두가지 방법뿐이었지만 여성은 먹는피임약, 자궁내장치, 난관수술, 월경주기법 등 다양해 상대적으로 여성이 피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새로운 피임약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용피임약, 주사, 바르는 젤 등 새로운 피임기술의 등장은 기존 피임약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주며 관련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피임(피임약·기구)시장은 연평균 6.4%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2022년에 49조2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먹는 피임약은 전체 시장에서 85% 이상을 점유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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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피임시장 현황. /사진=이미지투데이·얼라이드마켓리서치 |
◆‘먹는’ 남성용피임약까지
‘먹는’ 피임약도 더 이상 여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이 개발 중인 남성용피임약은 여성용피임약처럼 하루에 한번씩 복용해 효과를 낸다. 먹는 남성용피임약에 들어있는 물질은 ‘DMAU’로 테스토스테론 등 남성호르몬 수치를 억제해 임신 가능성을 낮춘다.
이 연구팀은 지난해 미국내분비학회에서 남성 8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신약개발 가능성을 내다봤다. 연구진은 시험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약물과 가짜약을 28일 동안 나눠주고 비교했다.
연구결과 DMAU 복용군에 테스토스테론 등 정자생성 호르몬의 농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부작용은 먹는 여성용피임약과 비슷한 수준인 체중증가·여드름 등이 보고됐다. 테스토스테론의 혈중농도가 지나치게 낮아져 이상증상을 보고한 케이스도 매우 적었다.
다만 아직까지 먹는 피임약에 대한 부작용 우려는 완벽하게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 피임법이었던 호르몬제제의 한계를 극복한 약물 개발에도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몬제제의 피임약이 두통·우울증·탈모·체중 증가 등 경미한 부작용부터 드물게 유방암·자궁암·혈전증 등을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부작용 위험이 적은 피임약에 대한 니즈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사 한방에 피임 완료
최근에는 중국 산학연구진이 새로운 기전으로 부작용 발현율을 크게 줄인 남성용피임젤 상용화에 한발짝 더 다가서 주목받고 있다. 중국 난창대학교 교수팀은 자신의 연구를 ‘되돌릴 수 있는 정관절제술’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술은 정자가 나갈 ‘문’을 막고 정자를 사멸시킨다. 주사로 정관에 젤을 주입해 굳히고 특정성분으로 정자를 용해한다. 임신을 원할 때 젤을 녹여 뺄 수 있다.
연구팀은 중장기(2~20주)적으로 효과를 지속할 남성용피임젤 개발을 목표로 시약을 수컷 쥐에 주입했다. 시약은 정자에 대한 물리적 장벽 역할을 하는 ‘하이드로겔’, 정자를 용해하는 물질인 ‘EDTA’, 금 나노입자 등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시약은 수컷 쥐의 정관을 물리적으로 막았으며 정자의 운동량도 둔화시켰다. 피임효과가 물리적·화학적 측면에서 동시에 발현됐다. 피임효과는 최대 2개월까지 유지됐다. 젤을 용해한 수컷 쥐는 바로 수정이 가능한 상태로 돌아왔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피임효과 유지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약의 주입비율을 조정하면 된다. 비침습성 근적외선으로 통해 비교적 간편하게 수정능력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 상용화 가치가 충분하다고 연구팀은 평가했다.
남성용피임젤에 대한 연구는 지난해 미국에서도 진행됐다.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는 지난해 12월에 부부 420쌍을 대상으로 바르는 남성용 피임젤 ‘NES/T’의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피임젤의 성분은 항체호르몬인 ‘프로게스틴’ 등으로 체내에 들어가면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생산을 막는다. 약효는 2~3일간 지속된다. 어깨, 등처럼 신체 아무 부위에 발라도 피임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인식변화에 피임약 개발 활성화
여성용피임약이 개발된 지 50여년 만에 남성용피임약 관련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 젠더(성) 평등이 이슈화되며 남성에게도 ‘피임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변하고 있다. 또한 건강보건 향상으로 ‘미충족 수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피임의 의무를 한쪽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행동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1980년대 가장 대표적인 피임법은 난관수술·자궁내장치 등 여성 위주였으나 최근 여성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성평등현상이 이뤄지자 콘돔 등 남성피임법의 수요가 서서히 늘고 있다”며 “난관수술의 비중은 정점을 찍은 1988년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탔으며 현재 가장 대중적인 피임법은 월경주기법이나 콘돔 착용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성용피임약 연구가 그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배경에는 제약업계가 철저한 이익계산에 따라 판을 주도적으로 끌었다는 주장이 있다. 피임약 연구가 다른 약물보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뎠던 이유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먹는 여성용피임약이 개발된 지 오래 지났지만 이후 상용화에 성공한 새로운 기전의 피임약은 없다”며 “먹는 여성용피임약은 반복적으로 구입해야하기 때문에 제약회사 입장에서 매력적인 수익모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0호(2019년 2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