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 뉴스1
대법원 전경 ⓒ 뉴스1

(서울=뉴스1) 이세현 윤다정 기자 = 2017년 사법부를 뒤흔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됐던 전·현직 법관들 관련 소송들이 대법원에서 5년 넘게 표류 중이다.

대법원이 의혹 관련 재판에 대한 결론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법조계에서는 "대법관들이 자신이 직접 판결하지 않으려고 결론을 일부러 미루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임성근 징계 취소소송 6년째 대법에서 '감감무소식'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18년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햇수로 6년째 심리 중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일선 재판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견책 징계를 받자, 취소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2018년 10월 17일 접수된 후 이틀 후인 19일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가 배당됐다. 이후 법원행정처장이 답변서를 낸 것 외에 별다른 진행이 없다.

그동안 임 전 부장판사는 3심에 걸쳐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징계 사건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정지 상태다.

5년째 계류 중인 사건도 많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각 정직, 감봉 등 징계를 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김민수 전 부장판사, 방창현 부장판사 등 5명은 2019년 1월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 사건들은 대법원 1·2·3부가 나눠 맡고 있다.

대법원은 2022년 신광렬 전 부장판사가 2016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 비리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했다는 이유로 감봉 6개월, 조의연 부장판사는 같은 이유로 견책 징계를 의결했다. 이들은 2022년 2월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역시 결론은 아직이다.

징계 소송을 낸 중 법관들 3명은 현직 법관이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징계취소소송의 결론을 내지 않는 것을 관련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기 위한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대법원은 좀처럼 심리에 속도를 내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신 전 부장판사와 조 부장판사가 징계를 받고 소송을 낸 시기는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된 직후였다.

◇'사법행정권 남용' 형사재판도 하세월

대법원에서 늘어지고 있는 재판은 징계취소 소송만이 아니다. 형사 재판도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되기만 하면 기간이 길어진다.

2019년 3월 시작된 이민걸 전 부장판사 등 4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은 1, 2심을 거쳐 2022년 2월 대법원에 접수됐다. 2년간 '쟁점 논의 중'이던 이 재판은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지난달 갑작스레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 재배당이 이뤄졌다.

대법원에 재배당 사유를 물었지만 재판부 내부 사정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 재판 과정에서 신청한 재판부 기피신청도 대법원에서 4개월 넘게 끌다가 한 언론에서 이를 지적하는 기사가 나오자, 열흘 뒤 기각 결론을 내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소부에서 대법관들이 통일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임 전 차장 재판부가 교체될 가능성이 있는 법관 정기인사 때까지 최종 판단을 미룬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와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1.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와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1.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설마 징계 결론도 아직?"…법원 내부 뒷말 무성

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한정' 느림보 행보가 거듭되면서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행정권 연루 2차 징계 대상자 중 일부가 아직 징계 결론조차 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2019년 5월 대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연루 법관 13명에 이어 10명의 법관에게 2차로 징계를 청구했다. 그러나 신 전 부장판사와 조 부장판사, 성창호 전 부장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7명에 대한 결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통상 징계 사건은 법관의 신분 보장과 재판의 독립을 위해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가 일부 법관에 대한 징계 여부를 '추후 지정'과 유사한 형태로 두고 논의를 미루고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징계 청구가 된 상황에서는 사표 수리가 되지 않아 퇴직도 할 수 없다"며 "만약 징계위가 결론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면, 해당 법관에게 몇 년 동안 불안정한 신분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관보에 게재되는 것 외에 법관의 징계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관징계법 취지 맞지 않다" 지적…고의성 의심도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이 같은 '미루기'가 법관징계법의 취지를 몰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관징계법 제27조는 법관이 징계처분 불복소송을 대법원 단심으로 재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경지법 한 부장판사는 "법관징계법이 징계 불복소송을 단심으로 재판하게 한 것은 법관 징계 여부가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위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하나의 사건을 대법원이 6년이나 끌고 있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고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들이 직접 판결하니 부담스러우니 일부러 미뤄놓고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며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것 같다. 고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