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부스를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주머니 속에 짤랑거리는 10원짜리 동전을 한 웅큼 집어넣고 연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웃음짓던 시절이다. 자주 가던 공중전화부스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빨리 나와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역 앞을 지날 때 공중전화부스를 보면 왠지 반갑지만 들어갈 일이 없다. 불과 20여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걸어다니며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것도 이미 먼 옛날이야기다. 한뼘 남짓한 크기의 네모난 단말기로 전세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비싼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음성통화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요금이 더 부과되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

 


/사진=머니위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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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K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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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의 상징’ 휴대폰

국내에서 첫 이동통신시대를 연 것은 지난 1984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서비스를 제공한 차량용 전화기 ‘카폰’이다. 카폰은 본체가 차량과 연결돼 있어 배터리가 소진될 염려가 없었지만 차량 밖으로 나가서 통화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기기값이 엄청나게 비싸 부자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카폰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직접 들고 다니는 전화기로 진화했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국내 최초 휴대전화 SH-100은 단말기 가격만 무려 400만원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 포니의 가격이 500만원이니 주머니에 자동차 한대를 넣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화요금도 단말기 가격만큼 비쌌다. 기본료가 월 2만7000원에 거리별 요금제로 50km 이내는 10초당 25원, 50~100km까지는 5초당 25원, 100km 이상은 3.5초당 25원을 받았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광고로 사용한 삼성전자의 전략이 적중해 휴대폰은 주문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 이동통신은 지난 1996년 디지털로 전환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이 등장한 것. 이때부터 음성뿐 아니라 문자와 64kbps속도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졌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은 통화에 혼선이 생기고 주파수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난 200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세대 이동통신은 유럽식인 GSM방식과 미국식인 CDMA방식으로 나뉘는데 국내에서는 CDMA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했다. 도입 초기 800MHz의 주파수를 사용했던 2세대 통신은 지난 1997년 1.7GHz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로 옮겨갔다. 높은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PCS는 기존 방식보다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기에 유리했다.

이를 계기로 1세대 막바지인 지난 1995년 164만명에 불과하던 이동통신 가입자는 2000년에 이르러 2681만명으로 급증했다. 당시 휴대폰 판매 대리점에서 일했던 업계 관계자는 “단말기가 작아지고 기능이 다양화된 점도 있지만 단말기 가격 보조금 제도가 기승을 부리며 가입자를 끌어들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의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0년 6월부터 단말기 보조금제를 폐지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이터를 이용한다지만 느린 속도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소프트웨어 탓에 소비자에게 휴대폰은 ‘전화기’라는 인식이 뚜렷했다. 당시 화제를 모았던 커플요금제, 캠퍼스요금제 등을 봐도 음성통화 위주로 요금제가 설계됐음을 알 수 있다.


[커버스토리] 걸어다니며 전화만 해도 좋았는데…

◆ 전화는 부가서비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이동통신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3G서비스를 선보인 것. 이때부터 SK텔레콤은 T, KT는 show,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는 Oz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서비스 경쟁을 시작했다. 다만 스마트폰의 등장이 3G서비스의 개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3G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유심(USIM)칩을 이용해 자신의 회선 정보를 저장한다는 점이다. 복잡한 기기변경 절차 없이 회선번호 등이 저장된 유심칩만 있으면 어떤 기기라도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인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기술은 데이터전송속도를 최대 2Mbps까지 지원해 동영상과 같은 고용량 콘텐츠를 휴대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HSPA(High Speed Packet Access) 기술이 등장하며 데이터 속도는 14.4Mbps까지 향상됐다.

이 같은 기능을 발판삼아 스마트폰 계보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아이폰3G가 등장했다. 터치스크린과 애플리케이션 등의 생태계를 구축한 아이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이동통신사의 요금제도 본격적으로 음성통화에서 데이터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지난 2010년 SK텔레콤은 월 5만5000원부터 가입이 가능한 3G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일각에서는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면 트래픽이 폭증하고 회사의 순이익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에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도 3G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 행렬에 연달아 동참했다.

기술의 진보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고 마침내 지난 2011년 4G시대가 개막했다. 4G의 대표기술인 LTE(Long Term Evolution)는 기존에 문자를 주고받던 방식에서 사진으로 대화하고 영상을 공유하는 멀티미디어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시행 초기 3G 무제한 요금제를 쓰던 소비자는 데이터 사용에 제한이 있는 LTE서비스에 가입하기를 꺼렸다.

당시 LTE요금제의 경우 기본으로 제공되는 데이터 소진 이후 사용분에 대해서 평균 1Kb당 0.05원의 요금을 계단식으로 부과했다. 가령 1Gb의 데이터를 더 사용하면 약 5만원의 요금이 추가로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LG유플러스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월 9만5000원부터 가입 가능한 LTE 무제한 요금제를 선보였고 가입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동통신의 패러다임은 음성통화 중심에서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변화했다. 주된 서비스였던 음성통화는 이제 부가서비스로 전락했다. 최근 이통사의 연이은 데이터중심 요금제 출시는 이런 환경을 대변한다. 아직 데이터중심 요금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변화를 거듭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