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소득 수준이 낮아도 자식 스스로 공부만 잘 하면 명문대에 입학하고 출세 코스를 밟아 부와 명성을 쌓던 '개천의 용'들이 사라지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보다는 부모의 소득과 집안 환경에 따라 교육 수준과 질이 달라지는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어서다.
고소득 가구일수록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은 기초적인 교육에서조차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져있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만큼 '부모의 지갑'이 아닌 '사회의 지원'으로 교육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늘어나는 사교육비… 소득 수준따라 격차도 커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발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1년 새 2조1000억원(7.7%) 늘어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령인구 521만명에서 513만명으로 8만명이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사교육비 지출은 더 많아진 것이다.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9만2000원이었으나 소득별로 격차가 컸다. 월평균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6000원인데 비해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5000원으로 3.3배 차이가 났다. 소득에 따라 자녀에 대한 교육 수준이 달라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지표다.
거주지에 따른 격차도 크다. 서울 지역 고등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02만9000원으로 전국 평균(47만4000원)을 두 배이상 웃돌았다.
이 같은 교육 격차 확대는 상위권대학 진학률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4년 한국교육종단연구 원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0년 기준 소득 상위 20%에 속한 고3의 상위권대(상위 8개 대학·의학·치의대·한의대·수의대) 진학률은 하위 20%의 5.4배에 이르렀다. 거주지역에 따른 서울대 진학률 역시 서울(0.85%)이 비서울(0.33%)보다 2.6배나 높았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육부와 한국장학재단, 전국 의과대학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도 2013~2024년 12년간 전국 의대 신입생 3만 1883명 가운데 경제적 취약계층인 기초·차상위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신입생은 469명(1.4%)에 불과했다.
계층 이동 사다리 끊길라… 교육 재건 필요
상위권대 입시에서 가계 소득과 사교육 환경 등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더 크게 작용하면 계층이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이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특히 지역별로도 입시 격차가 벌어질 수록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집중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 지역 인재 유출, 교육비 부담에 따른 저출산과 만혼 증가 등의 사회문제도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한은은 교육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이 입학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기준과 전형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등의 영향으로 지역인재를 놓치는 현상을 막고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성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한은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대학 내 지역적 다양성 확보는 개인적으로는 대학생의 역량 발전을 촉진하고 사회적으로는 포용적이고 공평한 사회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 입시경쟁을 지역적으로 분산시켜 수도권 인구집중, 서울 주택가격 상승 저출산 및 만혼 등의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수능킬러문항 방지법'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는 수능 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해야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들고 공교육 정상화가 이뤄져 중장기적으로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있다는 판단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대국민 인식조사에서도 국민의 76.3%가 이 법안에 찬성했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 통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고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