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으로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자 은행권이 부랴부랴 판매 중단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러한 고위험 고난도 상품이 은행 창구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도 지적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전국 각 지점에 원금손실 우려가 있는 주가연계신탁(ELT)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현재 NH농협은행에선 주가연계 파생상품 중 원금 보장이 가능한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만 판매 중이다.

은행들은 ELS를 펀드(ELF)와 신탁(ELT) 형태로 판매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된다.


현재 금융권에서 문제가 되는 H지수 편입 상품은 2021년에 판매됐던 ELS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H지수 연계 ELS 판매 잔액은 총 8조4100억원이다. 상품 구조와 현재 주가 수준을 감안할 때 3~4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

5대 은행 중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많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20일부터 KB국민은행에 대해 ELS 판매 현장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 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KB국민·하나 등 시중은행들은 농협은행이 원금손실 우려가 있는 ELT를 판매 중단했다는 소식에 내부적으로 판매 중단 조치 검토에 들어갔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홍콩H지수가 있는 ELS상품에 대해 판매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H지수가 기초자산으로 포함된 ELT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ELS 내 H지수 기초자산 편입을 지난해 12월부터 중단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H지수가 기초자산으로 편입된 ELS는 모두 조기상환이 완료됐다"며 "지난해 우리은행 전체 ELS 판매 금액은 4조8000억원이었는데 이중 H지수 연계 ELS는 약 410억원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이 H지수 편입 ELS 판매 금액이 낮은 이유는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 투자자 중심에서 상품선정, 판매 및 사후관리, 투자자 보호 등 투자상품 판매 프로세스를 개선한 결과로 분석된다.

홍콩 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9일 1만2106.77로 고점을 찍은 이후 현재 반토막 수준인 6040선에 거래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ELS 대규모 손실은 라임펀드 사태와 다르다"며 "당시 투자자 모두에게 원금을 반환한 것은 불완전판매 이슈보다 자산운용사가 상품 판매 전 판매사와 투자자에게 허위 사실을 공지한 것이 문제여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은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근거로 상품 판매 계약이 성립될 수 없으니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복현 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CEO(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저도 잘 안읽히는 (ELS)상품을 읽고 질문 내내 답변하라고 해서 '네네' 답변한 것만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고 다 면제될 수 있는 건지에 대한 판단은 한번 생각해볼 부분"이라며 " 본사의 KPI 방침 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검사 내지 향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